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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디가꼬 Oct 07. 2024

우리가 걷는 한 그냥 길일 뿐이다

우리가 걷는 한 그냥 길일뿐이다  


사람들은 흔히들 음식 알레르기가 있다고 하면 계란이나 우유 등 일부 음식만 피하면 되는 간단한 일로만 생각한다. 사실 아이를 키우기 전까지는 나도 그랬다.  하지만 음식 자체를 제한하는 것 말고도 신경 쓰고, 감내해야 할 것들이 차고 넘쳤다.


 환자 본인뿐 아니라 가족들도 함께 음식을 제한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매일 자고 일어나는 침구류에도 진드기라는 알레르기 물질이 있어 항상 깨끗하게 세탁해야 했다.

집안의 온도와 습도는 적정하게 조절해서 처음부터 알레르기 물질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고,

가끔 바깥 외출이나 여행이라도 할 때면 미세먼지나 자외선도 피부염에 영향을 줄 수 있어 반드시 날씨를 체크해야 했다.  또 먹는 약과 바르는 연고 등 갑작스러운 알레르기 반응에 대비하기 위한 응급대처법도 미리 익혀 둬야 한다. 특히나 아나필락시스 증상을 긴급히 완화하는 응급주사는 사용법뿐 아니라 학교나 주변사람들에게도 미리 알려둬야 했다.

또 신축 건물로 이사라도 갈 일이 생긴다면 새집 증후군도 알레르기를 악화시킬 수 있어 주기적으로 환기를 시키거나, 베이크 아웃을 통해 실내 온도를 높여 마감재에서 나오는 유해물질이나 독성물질을 밖으로 내보내야 했다.  매년 필수적으로 맞아야 하는 독감 백신은 계란이 포함되어 있어 알레르기가 있다면 미리 따로 신청을 하거나 병원마다 수소문해서 안전한 세포배양 백신을 맞아야 했고,  조리할 때 사용하는 기구도 항상 분리해서 보관해야 하며, 접촉 만으로도 반응을 보이는 식품은 만지기만 해도 비누로 손을 깨끗이 씻어야 했다. 그리고 알레르기 환자들은 보통 비염까지 세트로 달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증상이 심한 봄철 꽃가루 알레르기부터 찬바람 불기 시작하는 가을 환절기까지 미리미리 예방하고 관리를 해야 했다.  


 이처럼 식품 알레르기로 인한 고통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먹을 수 있는 음식과 없는 음식은 어떻게 분리하고, 치료는 언제 시작하고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외출을 통해 세상밖으로 나왔을 때는 어떻게 대처하고 아이의 첫 번째 사회생활인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부터 학교 급식에 이르기까지 보통 아이들보다 훨씬 더 많은 선택지를 받게 되지만. 주저하는 알레르기 가족들을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신뢰할 수 없는 무분별한 정보와 사회적 관심 부족이었다.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달라지면서 원인 모를 알레르기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국내에서는 소아알레르기 및 호흡기학회 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5년마다 전국적인 역학조사가 이루어지는데 초등학생의 경우 의시가 알레르기라고 진단한 비율이 매년 가파른 속도로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었고. 이러한 반응은 원인 식품을 철저히 제한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라진다고 하지만 그 시기가 점점 길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이게게 먹일 수 있는 음식들을 찾아서 하나 라도 더 먹이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라, 언제 좋아질지 모르는 알레르기를 그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 가족의 경우, 죽어도 지나가지 않을 것 같은 시간들을 보내고 지금 아이는 뽀얀 피부를 가진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가 되었다. 매년 국가에서 시행하는 영유아검진을 통해 평균적으로 잘 성장하고 있다는 결과도 받았고, 알레르기 3종 세트인 계란, 우유, 밀가루부터 갑각류와 조개류, 땅콩 등 견과류를 거쳐 참치 같은 붉은 계열의 생선까지 이제 서서히 그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상비약은 지금도 챙겨 다니지만 책가방 보다 더 큰 도시락 가방은 벗어던진 지 오래되었고, 소망하던 뷔페 먹은 아이를 보는 꿈을 이루었다. 그리고 가끔씩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피자나 파스타를 먹거나 여행 중 맛집탐방까지 하게 되었다.  


'비록 길이 험하고 어렵더라도 우리가 걷는 한 그 길은 그냥 길일뿐이다'는 말은 힘들 때마다 나를 다시 힘차게 끌어당기는 자석이 되었다. 우리 가족의 이런 소중한 경험이 음식 알레르기라는 큰 절벽 앞에서 좌절하는 많은 부모들에게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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