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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디가꼬 Oct 21. 2024

마라톤을 달리는 마음으로

뷔페 먹는 아이를 보는 게 꿈

마라톤을 달리는 마음으로 


 데운 우유를 50g까지 증량했을 때였다. 

우리 가족은 "올해 생일엔 케이크를 먹을 수 있겠네"라고 벌써 희망고문을 시작했다. 

사실은 우유 40g을 증량했을 때부터 몸 여기저기에서 발진이 올라오며 심상치 않은 증상을 보였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항상 있는 일이겠거니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 피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1년 365일 발진이 하나도 없이 깨끗한 날이 

하루도 없었기 때문이다.  

  

 데운 우유를 60g으로 증량했을 때쯤 

평소와 다르게 손가락에 물방울 만한 기포 모양의 발진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하더니 점점 더 부위가 넓어졌다. 

평소에 보던 발진과는 완전히 달랐다. 

처음에는 벌레가 물렸거나 단순한 피부병인 줄만 알았다. 

집에 있는 스테로이드 연고로도 쉽게 가라앉지 않아 걱정스러운 마음에 병원을 찾았다. 

동네병원 피부과부터 대학병원까지 여러 병원을 다녔지만 

원인을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손가락에 난 물방울은 어느새 밥풀만 해졌다.     

그때 우리는 혹시 우유 면역치료 때문에 생긴 피부염이 아닐까? 하고 처음으로 의심했다. 


 만약에 알레르기 때문이라면 더 심각해지기 전에 지금 당장 치료를 중단해야 했다. 

어렵게 시작해서 하루하루 조금씩 양을 늘려가며 여기 가지 왔는데, 

모든 걸 포기하고 중단하면 똑같은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아직 정확하게 알레르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 

아내와 난 고민 끝에 스테로이드 연고의 강도를 한 단계 높여 가며, 

우유를 70g까지 증량했다. 

그런데 이번엔  손가락의 기포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갈라진 사이로 진물까지 나면서 

아주 심각한 상태로 변했다. 

게다가 처음 손가락에서 시작했던 기포 모양의 상처는 코와 눈 부위에도 발견되기 시작했다. 

그 길로 치료를 잠정적으로 중단했다. 

어차피 처음부터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 시작한 치료기 때문에 

천천히 가더라도 아이의 건강을 챙기면서 다시 가기로 했다.

 

 그러나 또 다른 난관이 찾아왔다. 

치료를 다시 시작하게 되면서 10g 증량 시부터 먹어왔던 우유가 첨과 된 과자까지 

함께 중단해야 하는지를 두고 또다시 고민하게 된 것이다. 

알레르기 치료는 모든 것이 선택과 고민의 연속이었다. 

8살이 돼서야 겨우 먹기 시작한 과자를 

또다시 차단하는 것은 부모로서 아이에게 할 짓이 아니었지만 

완전한 화재진압을 위해서는 군불까지 확실히 정리해야 하듯이 

완전하게 끊고 다시 시작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상처들이 아물어 갔다. 

피부가 다시 예전의 모습을 찾았을 때쯤 면역치료를 다시 시작했다. 

우유만 통과되면 모든 종류의 아이스크림과 빵, 과자와 요구르트뿐 아니라 

그토록 기다렸던 생일 케이크를 먹을 수 있었다. 

비록 8살 생일에도 케이크를 먹는 건 실패했지만 

"올해 못 먹으면 내년에 먹으면 되지 뭐"라며 오히려 엄마아빠를 위로하는 대견한 아들이다.   

 

 알레르기라는 질환은 결코 하루아침에 좋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더딘 속도에 조바심은 나겠지만 완주를 위해선 100미터처럼 전력 질주로 힘을 다 빼서는 안 되고, 마라톤처럼 지치지 않게 페이스 조절을 해야 했다. 같이 뛰어주는 페이스 메이커는 없지만 스스로 속도 조절을 못 하면 결국 완주에 실패할 수 있었다. 우유 치료가 다른 음식보다 확실히 어렵다고 생각은 했지만 접촉만으로도 두드러기 반응이 올라오던 때를 생각하면, 그래도 해볼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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