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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만큼이나 커진 상처

뷔페 먹는 아이를 보는게 꿈

by 어디가꼬

피부만큼이나 커진 상처

육아를 처음 경험한 사람들은 흔히들 "육아보다 일하는 게 훨씬 편하다, 군대를 한번 더 가는 게 오히려 낳겠다"는 말들을 한다. 그만큼 육아가 힘들다는 뜻이다. 게다가 우리 부부에겐 음식 알레르기까지 겹치면서 아내의 고통은 더 커졌다. 출산의 고통 뒤엔 알레르기와 싸워야 할 전쟁 같은 육아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평범해 보이던 육아도 우리에겐 더 특별하게만 느껴졌다,


모유를 떼고 이유식을 시작할 무렵부터 점점 거칠고 붉어지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처음에는 음식 알레르기라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동네병원에서부터 시작해서 여러 병원을 돌고 돌아 마지막으로 상급병원에서 병명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현실로 받아들였다. 보통 산모들은 출산 후 심한 육체적, 정신적 변화와 함께 호르몬 변화를 겪게 되어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평소에도 잠이 많았던 아내는 매일밤 엄마의 머리맡에서 머리카락에 집착하며 뒤척이는 아이 때문에 심각한 수면 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보통 아이들은 애착을 갖는 물건들이 하나쯤 있는데 이런 애착은 아이 자신이 불안함이 생길 경우 정서적 안정을 찾을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보통 인형이나 물건에 집착하게 된다. 그런데 아이는 특이하게도 엄마의 머리카락에 애착이 형성되어 있었다. 특히 졸리거나 잠을 자다가 중간에 깰 때는 어김없이 엄마의 머리카락을 본능적으로 찾아가 손으로 만지고 코로 냄새를 맡아야 겨우 잠이 들었다. 그때는 몰랐다. 왜 하필 엄마의 머리카락에 애착이 형성되었는지? 아빠가 대신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이 원망스럽만 했다.


병원에서 음식 알레르기라는 병명으로 진단을 받고 나서야 그동안 말 못 하는 아이가 가려워서 밤마다 잠을 설쳤구나, 모유를 끊고 난 뒤 갑자기 찾아온 알레르기와 가려움증으로 인한 불안함이 엄마에게 그중에서도 머리카락에 집착을 하면서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으려고 애를 썼구나 싶었다. 아이의 가려움을 해결해 줄 수 없어 안쓰러워하는 아내 역시 아이와 함께 잠을 이루지 못했고,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나도 같이 잠을 설쳤다. 그렇게 가족 모두가 알레르기와의 전쟁을 치러야 내야 했다.


식품 알레르기에 대한 정보는 손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지만, 그만큼 정확하지 못한 정보가 난무하고 있었다. 일반 소아청소년과 병원이 아니라 좀 더 전문적인 알레르기 치료가 필요했다. 그래서 지역에서 유일하게 알레르기 전문의가 있는 상급병원에 예약을 하고 진료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그동안의 알레르기에 대한 불안과 궁금증으로 만나자마자 질문세례를 퍼붓는 아내에게 병원 의사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안된다, 큰일 난다, 피해라 “가 전부였다.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되묻기라도 하면 면박을 당하기도 했다. 기대했던 상급병원의 진료도 실망스럽게 끝나버리자 아내는 더욱 심각한 스트레스와 우울감에 시달렸다. 정확한 원인도 치료방법도 찾을 수 없어 밤마다 잠 못 드는 아내는 눈물을 달고 살았고. 함께 잠 못 이루는 날이 늘어가면서 친구들에게 욕먹을 각오를 하고 아이와 아내를 위해서 시간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에게 아이의 피부에 난 상처만큼이나 마음에 상처는 커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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