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걷는 한 그냥 길일뿐이다
아이가 태어난 후로 세상은 내가 사는 곳에서 아이가 살아가야 할 곳으로 모든 것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가 성장해 간다는 것은 자연스럽고 기쁜 일이지만 한편으론 학교라는 사회로부터 무한경쟁이 시작되었다는 안쓰러움도 들었다. 내 눈엔 여전히 품에 안고 싶은 '베이비' 지만 인간은 가족이란 테두리에서 자라나고 언젠가는 이 테두리를 깨고 나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은 축하할 일이다. 입학을 앞두고 마냥 즐거워하는 아이를 보니 대견하다.
어느 날 집으로 등기 한 통이 도착했다.
아들의 취학통지서와 함께 예비소집일을 알리는 안내서였다. 등기를 받고 나니 아이의 입학이 더 실감 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입학하기 전에 메고 다닐 가방만 하나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어린 시절과는 다르게 준비해야 할 것들이 참 많았다. 그중에서도 우리들의 첫 번째 관심사는 당연 돌봄 교실이었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웬만하면 돌봄 교실 신청을 받아 준다고 하지만 아이가 다닐 학교는 신도시 초대형 학교에다 젊은 맞벌이 부부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 변수가 있었다. 돌봄 교실 당첨 여부에 따라서 나머지 방과 후의 일정도 결정되기 때문에 끝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돌봄 교실이 결정되면 다음으로는 방과 후 수업이나 일반 사설 학원을 선택해서 동선을 짜야했다. 아빠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예비소집일은 학생기초생활조사서 등 학생의 기본 정보를 학교에 제출하고, 입학하기 전 학교와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날이었다. 그래서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꼼꼼하게 체크했다. 사실 예비소집의 가장 큰 목적은 의무교육 대상 학생의 안전여부를 확인하는 것이었지만, 이날 돌봄 교실 당첨여부와 1년 동안 함께할 담임교사가 배정되는 중요한 날이기도 했다.
사실 적극적인 면역치료를 시작한 이후 이날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알레르기 3종 세트인 계란, 우유, 밀가루 만이라도 통과하자는 게 최종 목표였지만 아직까지 계란완숙과 밀가루만 겨우 통과한 상태였다.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필사적으로 치료에 전념한 이유는 학교에서 주는 급식을 먹기 위해서였다. 소규모 어린이집과는 달리 아이가 다닐 학교는 학생수만 1600명에 교직원까지 합치면 1700명이 넘는 데다가 1학년만 15개 반이나 되는 초대형 학교였기 때문에 급식에 대한 배려도 어렵겠지만 따로 도시락을 싸는 것 또한 힘들 것 같았다. 평생 집에서 엄마가 해준 밥만 먹을 것 같은 아이가 벌써 초등학생이 된다니 입학식을 앞두고 설렘반, 걱정반으로 밤잠을 설쳤다. 누구 하나 집에서 귀하지 않은 아이가 있겠냐만은 아이는 학교의 도움과 배려 없이는 밥을 먹을 수도 없고, 실수로 알레르기에 노출이라도 된다면 언제든 위험한 일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예비소집일을 통해 사전에 학생기초생활조사서 등 아이의 심각한 알레르기 정보를 제출했지만 입학식을 앞두고 부모도 아이도 발을 동동 굴렀다. 사전에 아무런 연락이 없는 학교의 안일한 태도에 화가 나기도 했다. 아내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라서 학기 초 새 학기 준비로 학교와 선생님들이 많이 바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라 몇 번을 망설이다. 담임교사가 배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렵게 전화통화도 했지만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학교에선 부모만큼은 아닐지라도 심각성에 대한 인식을 못하는 건 아닐까? 입학날까지 학교에선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드디어 '학교'라는 새로운 전쟁이 시작된 걸까? 입학식 날 아내는 누구보다 바빴다. 아이의 알레르기 정보를 알기 쉽게 정리한 표를 여러 개 코팅해서 챙겨 들고 제일 먼저 급식실로 가서 영양교사를 만났다. 학교의 급식 식단표를 확인해서 최대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리스크를 만들어 학교에 보내고, 못 먹는 음식은 대체 음식으로 도시락을 싸야 했기 때문이다. 또 접촉만으로 반응을 보이는 음식이 나오는 날이나 조리기구 공동 사용여부 또는 수업 중 알레르기 음식 사용 등 적은 노출 가능성까지 신경을 써야 했다.
두 번째로 방문한 곳은 보건실이었다. 보건교사에게 아이의 상황을 설명하고,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응급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상비약과 응급주사(젝스트)도 유통기간이 지나지 않게 미리미리 챙겨서 따로 보내야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급식실과 보건실에 다녀온 후 선생님들이 모두 너무 좋은 분들이라 한결 마음이 놓인다는 아내의 말에 나도 덩달아 마음이 가벼워졌다. 세 번째로 방문한 곳은 돌봄 교실이었다. 아이가 방과 후에 머물게 될 돌봄 교실에서도 아이들에게 간식이 제공되기 때문에 급식과 마찬가지로 간식의 종류와 알레르기 성분을 확인해서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해야 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급식과 달리 돌봄 간식은 제공업체가 달라서 미리 성분을 확인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무조건 대체 음식을 싸서 보낼 수 도 있지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다면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알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돌봄 간식 일체를 모두 포기하고 대체음식으로 도시락을 싸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