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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첩을 정리하는 세 가지 이유

우리가 걷는 한 그냥 길일 뿐이다

by 어디가꼬


나는 모두 네 번의 여행을 즐긴다


나는 여행을 준비할 때마다 모두 네 번의 여행을 즐긴다.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

계획을 짜면서 한 번의 여행을 즐기고. 여행지와 일정이 결정되면 필요한 물건을 챙기고 가방을 싸면서 두 번째 여행을 즐긴다.


그리고 계획에 따라 실전에서 세 번째 여행을 즐기고, 집으로 돌아오면 여행 중에 찍은

사진을 정리하며 모두 네 번째 여행을 즐겼다.


어디 여행뿐이겠는가?

인생이 곧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탓에 살아온 여정만큼이나 찍은 사진도 계속 쌓여 갔다.

그동안 찍어놓은 수많은 사진들이 노트북이나 외장 하드에 뒤죽박죽 섞이고 쌓여가면서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먼저 동영상과 사진을 분리했다.

그리고 연도 별, 지역별, 국가 별로 하나하나 폴더를 만들어 정리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정리한 사진들 중에 특별히 잘 나왔다고 생각되는 베스트 사진들을 따로 모아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도록 포토북을 만들었다.


요즘에는 동네 사진관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인터넷으로 손쉽게 셀프 제작이 가능해졌다.

그렇게 만들기 시작한 포토북은 어느덧 책장 한 칸을 가득 채웠다.



넌 절대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포토북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 건,


첫 번째로 이다음에 나이가 들어 여행을 다닐 수 없을 만큼 늙었을 때 아내와 함께 소파에 앉아

포토북 한 권을 골라서 꺼내 들고, 따뜻하고 향기로운 차를 한 잔씩 마시면서

그 시절 유행했던 음악과 함께, 사진 속의 추억으로 또 다른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그래서 함께한 추억을 이야기하며 "그땐 그랬지?"라고 미소 지을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만 같었다.


두 번째는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처음으로 내준 숙제가 어릴 시절 찍은 사진들

중에서 연도 별로 1장씩 골라오는 숙제가 있었다.


아이와 함께 책장에서 연도 별로 정리된 포토북을 하나씩 꺼내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고르기 시작했는데 자신의 3살 때와, 4살 때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갑자기 '불쌍해'라고 말한다.


왜 그러나 봤더니 사진 속에서는 식품 알레르기 때문에 얼굴 여기저기에

긋불긋 올라온 발진과 간지러워 손으로 긁고 문질러서 난 상처로 가득한 사진들뿐이었다.

지금처럼 뽀얀 어린이가 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늘어나기 전까지 힘들고 어려웠던

그 시간들은 이제 사진에서만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세 번째는 아이가 외동이라 형제 없이

혼자 자란 탓에 요즘 들어 "외로워, 심심해" 라는 표현을 자주 한다.

가끔 부부모임에서 형제가 있는 다른 아이들이 부러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언젠가 엄마 아빠가 떠나고 세상에 혼자 남을 아이에게,

함께한 추억이 담긴 포토북을 유산처럼 남겨주고 싶었다.


그래서 항상 손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운 곳에 두고, 생각나거나 보고 싶을 때마다 언제든지

꺼내보며 함께 한 추억을 생각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넌 절대로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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