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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학원에 등록했다

우리가 걷는 한 그냥 길일뿐이다

by 어디가꼬



나는 매일 아침 메뉴를 검색한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아침을 든든하게 먹여서 보내라는 말을 주변에서 자주 들었다. 활동량이 많은 아이들이 아침을 굶고 학교에 가면 금세 허기가 지고 점심시간까지 시간 차가 크기 때문에 오전 내내 학업에 집중하기 힘들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래서 아이의 아침밥을 내가 직접 챙겨야 하겠다고 마음먹은 후, 여러 가지 고민에 빠졌다.


첫 번째 고민은 아이가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습관이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는 밤에 일찍 자야 하는데 아무리 시간을 쪼개고 부지런히 움직여도 밤 10시 안에 재우기가 힘들다. 그러니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도 자연스레 늦어지고 식탁에 앉아도 입맛이 없으니, 음식을 입에 물고만 있게 된다.


두 번째는 아침 메뉴에 대한 고민이었다. 아침에 부족한 시간도 문제였지만, 어떻게 하면 아이가 잘 먹을 수 있을지, 메뉴가 더 큰 고민이었다. 더군다나 아이는 알레르기 때문에, 음식에 대한 제한이 많다 보니 메뉴 선택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아이가 좋아할 만한 메뉴를 찾아 인터넷도 검색하고 도서관에 가서 관련된 책도 읽어보지만 아이는 아직 맛보다 모양이 더 중요한 것 같았다. 호기심을 자극해서 먹어보고 싶게 만드는 게 우선이었다.


세 번째 고민은 아내와 다른 식사 습관이었다. 아내는 배가 고파야 먹고, 먹어도 대충 끼니만 때우는 데 반해 나는 삼시 세 끼를 제때 맞춰서 잘 차려 먹어야 했다. 특히 주말이나 휴일 아침에는 아침밥을 꼭 챙겨 먹어야 하는 나와 잠을 더 자고 싶은 아내 사이에 갈등을 겪기도 했다.


이런저런 고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침밥을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알레르기 때문에 가려워서 밤잠을 설치는 아이, 그런 아이가 엄마의 머리카락에 집착하는 바람에 함께 잠을 못 이루는 아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서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내가 아침밥이라도 챙겨야 아내에게 충분한 수면시간을 보장해 줄 수 있었다.



메뉴가 바닥났다,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아침밥을 챙기기로 했지만 실제로 해보니 쉽지 않았다. 매일 아침 메뉴를 검색해도 평소 안 하던 음식 솜씨는 좀처럼 늘지 않았고, 몇 안 되는 요리가 반복되자 아이도 아내도 금세 싫증을 느꼈다. "에이 또야", 이젠 나도 메뉴가 바닥이 났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동네 요리학원을 알아봤더니. 때마침 두 달 동안 생활에서 응용이 가능한 총 12가지의 요리를 매주 2가지씩 배울 수 있는 혼합생활 요리 강의가 개강했다. 나는 학원에 등록했고, 매주 요리 수업이 있는 날이면 아내와 아이가 더 크게 기대하고 있었다.


아빠의 노력이 가상했는지 아이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메뉴가 뭐냐고 묻기도 하고, 때론 식탁에 미리 앉아 기다리기도 했다. 때로는 요리하는 나의 뒤에서 아무 말 없이 꼭 안아주기도 하고, 다 먹은 빈 그릇을 설거지통에 넣으면서 "잘 먹었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아이가 맛있게 잘 먹었을 때의 보람이 가장 컸다.


보통 아이들이 아빠보다 엄마와 더 친한 이유는 엄마들이 아이를 위해 설거지와 요리를 하기 때문이란다 요리를 배우면서 아침밥뿐 아니라 집안의 음식까지 모두 책임지면서 아이뿐 아니라 아내와도 훨씬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그런 점에서 요리를 배우기로 한 건 참 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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