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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듯 살고 싶다

우리가 걷는 한 그냥 길일뿐이다

by 어디가꼬


나는 여행을 참 좋아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커다란 비행기, 손에 든 캐리어, 주머니 속 여권"

모두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이다. 나는 여행을 참 좋아한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인생의 모든 순간이 여행처럼 설레고 즐거우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던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어쩌면 지금은 육아라는 길고도 험한 여행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여정이라고 했던가?

누가 먼저 도착하느냐보다는 삶의 매 순간을 추억과 의미로 채워가는 것이라고,

아이의 삶도 여행처럼 즐겁길 바라며 첫돌을 지나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 둘러업고 여행을 다녔다.

'코로나'라는 낯설고 특이한 이름이 등장해서 정체기를 겪을 때를 제외하고도

이제 아홉 살인 아이는 벌써 10개국이 넘는 나라를 여행했으니 참 많이도 데리고 다녔다.


모든 여행이 소중하고 매 순간이 잊을 수 없는 추억이지만

특히 첫 번째 여행지였던 필리핀의 보라카이는 더욱 그랬다.

부산에서 출발하는 직항이 없어 인천을 경유하고 칼리보 공항에 도착해서

픽업 차량으로 다시 2시간을 달려 보라카이로 들어가는 배를 타기 위해 '카티클란' 선착장에 도착,

다시 호텔로 이동하는 트라이시클까지 돌이 막 지난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힘들고 무더운 여정이었다.

멀고 험난하기도 했지만, 쌀에도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없어

햇반부터 시작해서 모든 음식을 집에서부터 직접 공수했고,

혹시 '물갈이'라도 할까 봐 물까지 캐리어에 하나 가득 담고 가야 했던 극한의 여행이었다.



상상했던 일들이 모두 현실이 되는 경험


두 번째로 기억에 남는 여행은 아내와의 결혼 10주년을 기념하고

아이의 성공적인 초등학교 적응을 축하하는 의미로 떠난 특별한 여행이었다.

어느덧 부쩍 커버린 아이는 이제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 함께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동반자가 되었다.

떠나기 전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환율과 화폐, 교통과 간단한 현지 인사말까지 함께 공부했고,

가벼운 가방 하나를 따로 챙겨 자기 물건은 스스로 챙기도록 했던 첫 번째 여행이었다,

현지 화폐로 환전해서 용돈까지 주었는데 사고 싶은 물건을 사기 위해

물건값을 깎거나 잔돈까지 꼼꼼히 챙기며 경제관념을 배울 수 있었고,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길을 헤매거나 의사소통이 안 되는 아빠를 지켜보며

영어 공부에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득템 한 휴대전화까지 목에 걸고 다니며

사진과 영상을 찍는 아이가 그저 귀엽기만 했다.

"아빠 진짜 호주는 거꾸로 나라네, 날씨도 반대고 운전석도 완전 반대야"

떠나기 전 함께 공부하고 계획하며 상상했던 모든 일들이 현실이 되는 경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로를 눈에 담으며 남태평양 바다의 모래사장을 마음껏 달려본 일은

아이를 본 만큼 성장시킬 것이다.


본 것은 기억하고 해 본 것은 이해한다는 불교 용어처럼 말이다.

아이가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 딱딱한 책상에 앉아 매일 정해진 양의 학습을 해치우는

그 이유를 알고 공부를 하게 될 거라고 믿는다.


도전은 늘 좌절과 실패의 가능성도 함께 한다. 하지만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다면

현재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실패를 통해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여행은 똑 닮았다.


우리의 인생은 좋은 대학, 좋은 직장, 그리고 결혼과 출산까지 마치 숙제하듯 살아간다.

이 모든 숙제가 끝나면 또 다른 숙제가 항상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끝없는 결과물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늘 부족함을 느끼며 불행해지곤 한다.

눈에 보이는 결과를 얻기 위해 무작정 달리기보다는

여행처럼 그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 수는 없을까?

여행은 얼마나 많은 나라를 다녔나? 얼마나 많은 경험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길 위에서 보고 느끼고 만나는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아름답다.

나는 아이와 언제나 여행하듯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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