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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알레르기 가족의 일상

우리가 걷는 한 그냥 길일뿐이다

by 어디가꼬


생활 습관보다 알레르기 치료와 성장이 우선이었다.


출근하는 아내를 대신해 아이의 등교 준비를 챙기려고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알레르기 발진으로 가려워서 긁다가 밤잠을 설치거나 비염으로 매일 아침 "더 잘 거야"를 반복하며 보채는 아이는 부모의 품을 벗어나 학교라는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손이 많이 가는 아이였다.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혹시 잠이 부족해서 성장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봐 밤잠이라도 푹 자게 해주고 싶어서 9살이 될 때까지 밤 기저귀를 떼지 못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침대 위에 물바다가 된 이불을 빨아야 했고, 무엇보다 더 이상 아이의 몸에 맞는 기저귀를 찾을 수 없어 성인용을 채워야 하나를 두고 고민했었다. 생활 습관이 조금 늦게 잡혀 부모가 힘들더라도 우선은 알레르기 치료와 성장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매일 아침잠이 부족해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아이를 세면대까지 데리고 가서 목에 수건을 두르고 얼굴에 물을 묻혀 잠을 깨웠다. 칫솔에 치약을 묻혀 손에 쥐여주고 부엌으로 나와 아침밥을 준비하는 사이 양치를 끝내고 식탁에 앉는 아이에게 입고 갈 옷도 따로 챙겨주었다. 그러나 아이는 등교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식탁에 앉아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한다. 시간 없다며 재촉도 해보고, 한 숟갈 크게 떠서 입에 넣어줘도 본다. 꺼내준 옷은 손에 잡더니 입는 건지? 벗는 건지? 옷과 하나가 되어 함께 뒹군다. 이것이 매일 아침 반복되는 알레르기 가족의 일상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6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아이는 모든 일과가 끝나면 매일 같은 시간에 학원 픽업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학교생활에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학원 차량을 안 타고 걸어서 집으로 오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그때까지 아이는 단 한 번도 집 밖에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 걸어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그리 멀지는 않지만, 신호등이 있는 편도 2차선의 건널목을 여러 번 건너야 했다. 길을 잃을 일은 없어도 오는 길에 메뚜기라도 잡겠다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신호를 잘 못 보지는 않을까? 난폭운전을 일삼는 배달 오토바이나 전동 킥보드에 부딪히지는 않을까? 혹시 길에서 나쁜 형들이라도 만나진 않을까?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비눗방울처럼 조심스럽기만 했다. 또 한편으로는 하굣길에 도대체 혼자 뭘 하고 싶어서 걸어오겠다는 건지 궁금하기도 했다.



아빠, 혼자 걸어서 갈래?


아침에 아이 등교를 시키고 늦은 아침을 챙겨 먹었다. 밀린 설거지와 이부자리 정리까지 마치고 나면 겨우 커피 한 잔 마시며 한숨을 돌린다. 핸드폰으로 밤새 일어난 주요 뉴스도 검색하고, 투자한 주식의 안부도 확인한다. 오늘은 이스라엘의 하마스 공격으로 주식시장이 온통 파란불이다. 평소 읽던 책을 펼쳐 몇 자 읽다 보니 점심시간이다.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고 동네 산책 한 바퀴를 돌고 나니 어느새 아이의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 되었다. 집에서 살림하는 엄마들이 애들 학교 보내놓고 집에서 도대체 뭘 하냐고 물으면 늘 시간이 없다는 말이 이해되었다.

오늘부터 혼자 걸어서 집에 오기로 한 날이다. 첫날이니만큼 몰래 숨어서 놀라게 해 주려고 시간 맞춰 나가서 지나가는 길목에 숨었다. 잠시 후 정확하게 마치는 시간에 학원 건물 앞에서 아이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과자 한 봉지를 들고 정신없이 먹으면서 걷고 있다. 봉지째로 입속에 '탈탈' 털어 넣더니 다 먹었는지 풀숲으로 가서 잠시 멈추어 선다. 곤충을 잡는 걸까? 자세히 보니 "쉬"를 한다. 학원에서 해결하고 나오지 라는 아쉬움과 함께 계속 지켜봤다.

그렇게 혼자 걸어가는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봤다.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아이가 어느새 훌쩍 자라서 엄마·아빠의 도움 없이 혼자 집까지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만감이 교차한다. 언제까지 아이의 등하굣길을 지켜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이 뒤에서 몰래 말없이 걸어도 보고, 먼 훗날 다시 꺼내 볼 수 있도록 사진도 한 장 담아 본다. 그러다가 뒤돌아본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가 한참을 웃으며 묻는다.

아들 : 언제부터 따라왔어?

아빠 : 저쪽 풀숲에서부터,

오늘 혼자 걸어 보니까 어땠어?

아들 : 아빠랑 같이 걸을 땐 가까웠는데, 혼자 걸으니까 멀었어.

아빠 : 그건 아빠랑 같이 걷는 게 좋아서 그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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