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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재능을 찾아주고 싶었다

우리가 걷는 한 그냥 길일 뿐이다

by 어디가꼬

아이와 함께 할 목록을 만들고 또 지운다.


나는 매일 아이와 함께 할 목록을 만들고 또 지운다. 가끔은 아이가 직접 목록을 작성할 때도 있다. 리스트에 작성된 목록들이 하나둘 쌓여 갈수록 지워지는 추억도 그만큼 쌓여 갔다.


아이가 세상에 처음 두 발로 섰을 때 느꼈던 감동처럼 언젠가 아름다운 자전거 길을 함께 신나게 달려보는 감동을 하고 싶어 막 걷기 시작한 아이를 데리고 발로 지면을 차는 방식의 균형 자전거를 시작으로 네발자전거를 지나 두발자전거를 거쳐 오르막길을 달리는 기어 변경 자전거에 이르기까지 자전거를 가르쳤다. 이제는 국내 유명 자전거 길을 신나게 달려보는 목록만이 남았다. 아이와 함께 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통해 커다란 성취감을 느껴 보고 싶어 주말 아침이면 가까운 동네 걷기대회부터 시작해서 지역을 대표하는 5km 마라톤 대회에 참가 했다. 함께 땀 흘려 뛰다 보면 긍정적인 사고뿐 아니라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얻게 된다. 이제는 10km 거쳐 하프와 풀코스에 도전하는 목록도 작성했다.


날씨가 선선해지면 매년 동네 앞산부터 시작해서 울산의 12경 중에 하나로 영남 알프스라 불리는 간월재에 오른다. 가을철 억새 군락지로도 유명한 곳으로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이국적인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면 지치고 힘든 일상을 잠시 잊게 만든다. 내친김에 아이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명산인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에 올라 보고 싶은 목록도 추가했다.

그 밖에도 몽골의 넓은 초원에서 말을 타고 광활한 대자연을 맘껏 달려보기, 세계 5대 다이빙 포인트 중 하나인 필리핀 보홀에서의 다이버 자격증 도전하기, 세계 3대 패러글라이딩 명소인 튀르키예 페티예에서의 점프 등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아이와 함께 목록들을 만들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또 하나씩 이루어지는 과정은 아이에게 더욱 집중하는 계기가 되었고, 무엇보다 아이가 커가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다.



아들, 넌 뭘 할 때 제일 행복하니?


내가 목록에 집착하는 또 다른 이유는 여러 가지 새로운 도전과 다양한 경험을 통해 아이에게 재능을 찾아주고 싶었다. 무엇을 할 때 제일 행복한지?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몰입한 적은 없는지? 말이다. 나의 어린 시절 축구공만 있으면 아주 오랫동안 즐겁게 놀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해가 지고 아이들이 모두 떠난 후에도 혼자 벽에다 지칠 때까지 공을 찰 정도로 몰입하기도 했다. 축구선수가 꿈이었지만 배우고 싶어도 가르쳐 주는 곳이 없어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포기하는 법을 먼저 배웠던 것 같다. 그런 아쉬움은 박지성이나 손흥민 선수가 경기장에서 멋지게 활약하는 모습을 볼 때나, 월드컵 같은 국제적인 경기에서 휘날리는 태극기를 볼 때마다 불쑥불쑥 올라왔다. 아이에게는 그런 아쉬움을 남겨주고 싶지 않았다. 오로지 아이의 행복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아빠의 마음과 달리 아직 표현이 서툴기만 한 아이가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무작정 아빠 손에 이끌려 따라만 다니는 건 아닌지? 아이도 함께 즐거운지? 과연 아이는 아빠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다 아이가 학교에서 그려 온 그림 한 장을 보게 되었다. 하루 종일 정성스럽게 그린 그림 속에는 나무가 있는 숲속에 잠자리채를 든 두 사람이 서있었다. 아마도 그림 속의 두 사람은 곤충채집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비와 매미도 보이고 잠자리와 개미도 보였다. 무척 즐거웠는지 두 사람의 입은 굉장히 빨갛고 눈은 엄청나게 크게 그렸다. 알고 보니 매주 금요일에는 한 주 동안 가장 즐거웠던 기억을 그림으로 그려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아이는 그때마다 아빠와 함께했던 시간을 그림으로 그리고 있었다. 그 후론 아무 말 없이 아이가 매주 그려 오는 그림을 유심히 바라보며 흐뭇한 아빠 미소를 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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