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걷는 한 그냥 길일뿐이다
마치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내 인생의 보너스 같았다. 때마침 아이와 아내도 여름방학을 맞았다. 방학 동안 가족 모두가 함께 보내는 것은 앞으로 살면서 다시는 오지 않을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그냥 보내기에는 너무 아쉬워 뭔가 특별한 여름방학을 준비했다. 그래서 우리도 요즘 유행한다는 한 달 살기를 떠났다.
그런데 어디로 가지? 고민 끝에 우리가 결정한 곳은 바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였다, 세계를 돌며 한 달 살기를 무려 46번이나 했던 유튜버 부부가 선택한 첫 번째 도시가 바로 '쿠알라룸푸르'였다. 그리고 아쉬운 김에 '조호바루'라는 도시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싱가포르까지 1주일 정도 일정에 넣었다. '쿠알라룸푸르'는 우리나라에서 비행시간이 길지 않고, 문화권과 피부색이 비슷하며,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그리고 물가가 저렴하며 치안이 안전한 나라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무작정 한 달 살기를 시작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항공권과 숙소만 예약하고 무계획으로 떠났다. 계획을 너무 세밀하게 짜면 시행착오는 줄일 수 있지만 그 계획에 또 다시 얽매이게 될 수도 있었고, 더 알차게 보내기 위해 계획을 짜느라 떠나기도 전에 에너지가 고갈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대체 한 달 동안이나 뭘 하지? 머리를 열심히 굴려보았다. 일부 자녀 교육에 욕심이 많은 부모들은 국제 학교나 어학원에 보내기도 했지만, 우리는 평소 해보기 힘든 체험 위주로 일정을 짰다. 그리고 가족들과 하루 종일 눈을 마주 보고 대화하며 오로지 서로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남는 시간에는 박물관, 도서관 같은 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현지인과 대화도 해보며 함께 어울려 보고 싶었다.
조급한 마음이 사라지니 마음에 여유도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면 숙소 주변을 달리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배가 고프면 가장 가까운 로컬 음식점을 찾아 현지 음식에 도전도 해보기도 하고, 오후가 되면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썼다. 그렇게 그동안 목말랐던 여행의 갈증도 풀고, 귀하게 찾아온 시간을 즐겼다.
한 번은 현지에서 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말레이시아는 1년 365일이 더운 나라라 에어컨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묵었던 레지던스형 숙소는 따로 창문이 없어서 환기할 수 없었고, 덕분에 지독한 비염 환자였던 아이와 나는 한 달 내내 목감기와 인후통을 달고 살아야 했다. 게다가 나는 도착하기 며칠 전 설거지하다가 유리 조각에 베여 손가락까지 퉁퉁 부으며 말썽을 부렸다. 그래서 우리는 원치 않게 낯선 땅에서 생전 처음으로 병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우리는 번역기까지 써가면서 무사히 진료받았고, 덕분에 낯선 땅에서의 막연한 두려움도 떨쳐낼 수 있었다. 또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 싱가포르에 다녀오다가 입국심사서를 미리 작성하지 않아 심사대에 발이 묶여 기차를 놓칠까 봐 발을 동동 구른 일, 쇼핑몰에 있는 자판기에 아이가 직접 결재하겠다며 하나뿐인 신용카드를 문틈 사이로 넣는 바람에 막막했던 일, 한국으로 돌아오는 연결편 항공기를 놓쳐 타이베이에서 강제로 1박을 하게 된 일 등 수없이 많은 추억은 학교나 학원에서 배울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며 성장의 시간이었다.
도전하는 열정과,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한 용기,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까지 한 달 살기를 통해 살아가는 데 중요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에 대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법도 배울 수 있었다. 인생에서 필요한 진짜 공부는 여행을 통에서 배울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여러 번 고민과 걱정을 하지만 결국 또 아이를 데리고 떠날 용기를 얻었다. 시계추처럼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다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여행을 떠나는 일은 그것만으로 큰 도전이기 때문이다.
'코이'라는 물고기는 작은 어항에 넣어두면 5~8cm밖에 자라지 않지만, 커다란 수족관이나 연못에 넣어두면 15~16cm까지 자란다. 그리고 강물에 방류하면 90~120cm까지 성장하는 물고기로 환경에 따라 자라는 크기가 다른 놀라운 물고기다. 같은 물고기가 어항에서 기르면 피라미가 되고, 강물에 놓아기르면 대어가 되는 신기한 물고기이다. 어떻게 자랄지 모르는 아이에게 집이란 작은 어항에서만 키우고 싶지 않았다. 오늘도 내가 아이와 떠날 새로운 여행지를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