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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 모니터링 참관

우리가 걷는 한 그냥 길일 뿐이다

by 어디가꼬

오늘은 학부모 급식 모니터링이 있는 날이다


이제 막 시작한 아이의 학교생활은 모든 것이 궁금했다. 알레르기 때문에 급식을 제대로 먹고 있는지가 제일 궁금하긴 했지만, 전반적인 학교생활이 모두 궁금했다. 그때까지 아이의 교실은 돌봄교실 겸용으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학교 공개의 날에도 교실 방문을 못 해본 상태였다. 그래서 오늘만을 기다렸다. 오늘은 학부모 급식 모니터링이 있는 날이라 공식적인 학교 방문이 가능했다.

급식 시간에 아이에게 배식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싫어하는 반찬을 골라내며 편식을 하진 않는지? 교실에서 수업 태도와 교우 관계는 어떤지?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는 무엇을 하며 보내는지? 급식 상황뿐 아니라 기본적인 학교생활을 엿보며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아이의 학교는 학생 수가 많아서 급식도 모두 3타임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아이가 포함된 저학년생들은 첫 타임으로 조금 이른 11시 20분부터 급식이 시작된다.

11쯤 학교에 도착하니 벌써 영양교사와 조리사는 급식 준비를 하고 있었고, 오늘 급식 모니터링에 참여할 학부모로 보이는 어머님 몇 분도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도 아빠는 역시 나 혼자였다.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시선은 나에게 집중됐다. 급식 모니터단의 역할은 식재료 검수를 통해 식품의 원산지, 신선도, 수량, 유통기한. 제조 일자 등을 확인하고, 조리 과정의 위생 상태나 식재료의 보관관리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었지만 고생하는 분들을 위해서 팔을 걷어붙이고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학교 급식은 맛과 영양뿐 아니라 모양이나 색깔까지 아이들의 선호도를 참고해서 잘 준비하는 듯했다. 모든 초등학교에 급식이 시행되는 1998년 이전까지 매일 아침 도시락을 싸서 다녀야 했던 나의 학창 시절과 비교하면 그저 부러울 뿐이었다.

약속된 시간이 되자 아이가 포함된 1학년들이 담임교사의 뒤를 따라 한 줄로 서서 걸어 들어오기 시작했고, 배식구에서 식판과 수저를 나눠주던 아빠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평소와 다르게 부끄러운 듯 알 수 없는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담임교사와 맨 앞줄에 서서 당당하게 배식구로 가더니 목에 걸고 있는 명찰 (그날 식단표 중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따로 표시해서 목에 걸고 있던 명찰) 을 배식하는 조리사 분에게 잘 보이도록 꺼냈다. 그리고 먹을 수 있는 음식만 받아 들고 정해진 자리에 가서 앉더니 아빠를 의식한 듯 금세 식판을 깨끗이 비우고 급식실 밖으로 나갔다.


일전에 아이 급식 문제로 항의 방문을 한 후, 학교에서도 신경을 많이 쓰는 듯 해 보였다. 급식을 총괄하는 영양교사와 같은 교사인 아내는 아침마다 교육청 내부망을 통해 그날의 식단에 대해 미리 상의했고, 급식실에서는 아이를 포함해 알레르기가 있는 몇몇 아이들을 위해 반찬 한 가지와 국을 따로 준비해 주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막연한 불안감은 어느 정도 사라졌다. 무엇보다 담임교사와 영양교사 그리고 조리사분까지 모두 아이의 음식 알레르기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대처하는 듯 해 보였다.



별난 아빠의 별난 사랑


첫 번째 급식 타임이 끝나고 휴식 시간을 이용해서 교실로 아이를 찾아 나섰다. 그동안 못 봤던 아이의 교실도 궁금했지만, 아침에 깜박하고 못 먹여서 보냈던 감기약을 먹여야 했다. 그런데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교실과 복도, 화장실까지 살펴보았지만, 아이를 찾을 수 없었다. 혹시나 해서 급식실 바로 옆에 있는 도서관에 갔더니 의자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 아이의 뒤통수가 보였다. 아직 어린아이들이라 점심시간에 도서관을 찾지도 않지만 찾았다 해도 장난을 치기 바쁜데 아이는 차분하게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그런 아이에게 혹시 방해라도 될까 봐 숨어서 지켜보니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서야 다시 교실로 돌아가 남은 점심시간을 즐겼다. 식판을 깔끔하게 비우고 도서관에서 책 한 권을 뚝딱 읽는 이쁜 아이의 모습을 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하루 종일 흐뭇했다. 아이는 그렇게 아빠의 걱정과는 달리 알레르기와의 전쟁 속에서도 늘 밝고 당당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퇴근 후, 다 같이 저녁 식사를 위해 식탁에 앉아 낮에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며 아이에게 물었다.


나 : 아들, 아빠가 학교 오는 거 싫어?

아들 : 아니

나 : 그런데 왜 표정이 안 좋았어?

아들 : 응, 머리가 조금 아팠어.

나 : 아빠 앞으로 학교 가지 말까?

아들 : 아니, 와도 돼


아이는 아빠가 왜 학교에 자주 나타나는지 아는 걸까?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쉬는 날 학교 급식실에서 3시간이나 고생해 가며 자신을 지켜보는 이유를 알까? 운영위원회 회의가 있는 날이면 학교에 일찍 도착해서 수업 중인 아이를 이리저리 훔쳐보고 가는 걸 알까?

사람들이 이런 나를 보고 별난 아빠라고 욕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알레르기에 대해 아직 부족한 사회적 배려와 인식은 나를 항상 별난 아빠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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