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걷는 한 그냥 길일 뿐이다
키가 아주 작은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자신을 꼭 닮은 아이를 쳐다보며 이다음에 자라서 아이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똑같이 걷게 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래서 아이에게 작은 키로 인해 특별히 불리하게 작용하게 될 '핸디캡'을 극복해 주기 위해 항상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해“라고 아이를 다독여 왔다.
한 번은 그 친구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거실과 방을 가득 채운 책을 보면서
그 친구의 아이에 대한 사랑과 간절함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 아이도 선택한 적이 없는 알레르기라는 커다란 '핸디캡'을 가지고 태어났다. 처음에는 아내도 나도 아무 음식이나 잘 먹으면서 건강하게만 자랐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져왔지만, 그 친구의 말을 듣고 보니 좀 더 당당하고 자존감 놓은 아이로 자라기 위해선 핸디캡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식을 낳고 부모가 되고 보니 자식의 행복이 인생에서 1순위가 되어 버렸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면 행복할까? 공부를 잘 하면 행복할까? 돈을 많이 물려줄 수는 없을 것 같으니 제외하고. 되고 싶은 사람이 되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면 행복하지 않을까?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이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면 과연 행복할까? 수학은 하지 않고, 시만 읊기보단 수학도 하고 시도 읊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렇다면 공부가 답인가? 아내도 처음엔 공부를 너무 일찍 시작하면 정작 몰입해야 할 시기에 동력이 떨어져서 오히려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며 반대해 왔다. 아내의 생각은 너무 단단해서 뚫고 들어갈 빈틈이 없어 보였다.
5살 무렵이었다. 집에서 열심히 뛰어놀기만 하는 아이와 달리 동갑내기 지민이는 벌써 본격적인 학습을 시작했다. 둘은 만나면 자연스럽게 비교의 대상이 되었다. 바위와 같이 흔들림 없는 아내와 달리 육아를 배워 본 적 없는 초보 아빠는 그럴 때마다 자꾸 흔들렸다. 아이가 자라면서 주위에 자녀 교육 이야기만 들리면 갑자기 귀가 커지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워들으니 커진 귀는 자꾸 팔랑거린다. 사교육이 판을 치는 세상에 자기 생각만 고집하기도 어려웠지만, 무작정 사람들을 쫓아가기도 힘들었다. 과연 무엇이 정답일까?
아이의 입학을 앞두고 그동안 절대로 흔들릴 것 같지 않던 아내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은 단단한 바위도 마구 흔들었다. 늦게 결혼해서 비교 대상이 없었던 나와는 다르게 아내의 주변에는 비슷한 시기에 결혼해서 같은 또래 자녀를 양육하는 친구가 여러 명 있었다. 그 친구들을 만나고 온 아내가 오랫동안 참은 듯 힘들게 말을 건넸다.
"여보, 우리도 학원 보낼까? 책은 어떤 걸 더 주문할까? 학습을 지금 시작하면 너무 늦지 않았을까?
알고 보니 아내는 모임에서 자녀 교육에 관련된 주제로 이야기했는데, 자신은 하루 학습량과 계획, 그리고 영어와 독서 습관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하나도 없었다. 나는 고민하는 아내를 데리고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어머님 한 분 찾아갔다.
어머님은 '울산의 강남'이라고 불리는 옥동에서 오래전부터 공부방을 운영해 오고 있었다. 함께 손잡고 청소년을 선도 하면서 알게 된 어머님은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학습 도우미를 자청할 정도로 아이들 교육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 어머님이 아이 키우면서 어려운 점 있거든 언제든지 연락하라는 말이 떠올랐다.
약속을 잡고 방문한 곳은 어머님이 운영하는 공부방 겸 집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서자, 눈의 휘둥그레졌다. 넓지 않은 집 거실은 탁자로 가득 차 있었고, 네모난 거실벽은 모두 책장으로 채워져 있었다. 천장은 따로 조명을 여러 개 설치해서 탁자를 환하게 비추고 있어 마치 북카페에 온 것 같았다. 거실 분위기는 자리에 앉기만 했는데도 무언가에 몰입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다. 그때까지 어머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어머님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집에서 혼자 일을 해야 했고, 공부방 운영을 통해 아이들 공부를 직접 봐주며 학원비도 아끼고, 생활비도 벌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방은 어머님의 교육에 대한 열정 하나로 첫째 아이와 조카를 서울대에 그리고 둘째 아이를 연세대에 입학시켰다. 어머님은 자기 경험에서 우러나는 비법을 마치 보물 상자에서 보물을 꺼내듯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풀어놓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머님의 이야기에 싱크홀에 빠진 자동차처럼 점점 빨려 들어갔다.
어머님 : 아이가 행복하길 바라세요?
나 : 네, 그럼요
어머님 :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요?
나 : 글쎄요!
어머님 : 아이는 이제 초등학교에 가면 앞으로 12년 동안 학교생활을 합니다.
우리나라의 학교 교육은 입시와 성적 위주라서 우선은 학교 성적이 좋아야 아이 자존감도
높아지고, 행복해 집니다.
어머님 : 혹시 영어학원에 보낸 적 있나요?
나 : 아니요 아직 없어요.
어머님 : 괜찮습니다. 지금 시작하면 됩니다. 딱 좋은 시기에 잘 오셨어요.
영어교육은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한 교육과 유창한 회화를 위한 교육,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그러나 가정에서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에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순 없고, 둘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성적을 위한 교육은 실력이 쌓이면 나중에 성인이 된 후에도 짧은 시간 안에 회화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지만, 회화를 위한 교육은 학교에서 좋은 성적
을 받을 수 없어 취업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나 : 우리 아이 너무 늦은 건 아닐까요?
어머님 : 지금이 영어교육을 시작하기 가장 좋은 시기예요.
나 : 그럼,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 지금 뭘 하면 되나요?
어머님 : 지금부터 영어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학원을 보내세요.
흥미가 잃지 않고 영어에 관심을 가질 정도의 학원이면 충분합니다.
오랜 시간 공부방을 운영했던 어머님으로 비법을 듣고 난 후,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영어학원을 검색했다. 동네 엄마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좋은 학원 몇 군데를 골라서 직접 찾아가 설명도 듣고, 상담도 받았다. 그렇게 아이는 영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2년이 지난 지금, 아이는 다니던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고, 피아노는 거실 한쪽의 장식장으로 변해 있었다. 축구클럽도 탈퇴해서 축구화와 축구공은 먼지가 묻은 채로 창고를 지키고 있고, 고흐 아저씨처럼 멋진 화가가 되겠다던 아이는 미술학원도 다니기 싫어해서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는 장난감 방에서 바구니만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영어학원만큼은 지금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잘 다니고 있고, 최근에는 실력까지 인정받아 다니던 반에서 상급으로 승격까지 했다. 이런 현상을 불교에서는 'Buddha' 이라 부른다. 깨달음을 얻은 이라는 의미로, 불교에서는 경전에 따라 그의 존재, 교훈 또는 그를 모방하는 사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