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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경험만큼 좋은 스승은 없다

우리가 걷는 한 그냥 길일뿐이다

by 어디가꼬


아빠의 경험은 아이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신뢰를 주었다.


이제 마트나 백화점에서 아빠가 아기띠를 메거나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모습은 흔한 일상이 되었다.

먹기 싫은 술을 억지로 마셔가며 3차까지

눈도장을 찍어야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근무 성적을 잘 받던 직장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회식 자체를 하지 않거나 아니면

점심 식사나 체육활동으로 대체하는 곳도 많아졌다.

혹시라도 퇴근 후 야근하거나 금요일 날 회식을 잡는 것은

아주 몰상식한 행동으로 치부되며,

나처럼 땡 하면 눈치 보지 않고 퇴근하는 땡돌이도 많아졌다.

이런 세상의 변화는 아빠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아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두게 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에게

"오늘은 학교에서 어떤 재미있는 일이 있었어? 점심은 좋아하는 반찬 나왔어?"라고,

매일 같은 질문을 한다. 아이에게 학교라는 곳은 항상 뭔가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고,

아주 맛있는 급식을 먹는 곳이란 생각을 갖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우연히 하교 후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와 마주쳤는데 아이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항상 밝던 아이가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길가의 잡풀을 발로 차며 화풀이하고 있었다.

뭔가 속상한 일이 있었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아무 말 없이 손을 꼭 잡고 함께 걸었다.

집에 도착한 아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터뜨렸다.

나는 그저 한없이 자상한 얼굴로 아이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눈물을 쏙 빼고 난 후,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다고 느꼈을 때,

아빠가 학교 다닐 때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주로 잘못했던 일, 친구들과 싸웠던 일, 선생님에게 혼났던 일이었다.

아이는 가만히 아빠의 경험을 듣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해맑은 표정으로

"진짜?, 아빠도 그랬어?"라고 되물었다.


애써 위로하려고 하거나 가르치려고 하기보단

아빠의 경험을 들려주는 것이 아이에게 훨씬 더 큰 위로와 용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또 한 번은 밀가루 알레르기 때문에 빵을 먹지 못하는 아이를 위해 라이스 제과점이

새로 오픈했다는 소식을 듣고 비건 빵을 사다 준 적이 있는데 그걸 먹고 난 후,

온몸에 발진이 심하게 올라왔고, 스테로이드 연고나 향히스타민제 만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아

병원 응급실까지 간 적이 있었다.


아마 비건 빵에도 소량의 글루텐 성분이 포함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병원 침대에 누운 아이는 팔에 수액을 맞기 위해 주삿바늘을 꽂아야 했는데,

먼저 와서 수액을 맞던 중학생 형의 울부짖음을 보더니 못 하겠다며 망설였다.

그런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빠도 어렸을 때, 학교 계단에서 장난치다가 넘어져서

다리를 심하게 다친 적이 있는데 상처 부위를 꿰매려면

마취 주사를 맞아야 해서 무서워서 막 울었어,

그런데 한 번 따끔한 것만 참으니까, 금방 괜찮아졌어."


아빠가 아팠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더니

아이는 놀랍게도 뭔가 결심한 듯 팔을 선뜻 내주더니

피부를 뚫고 들어가는 주삿바늘의 고통을 참아 냈다.


두려움에 떨고 있던 아이에게 믿고 의지하든 아빠의 경험은

세상 그 무엇보다 가장 큰 신뢰를 주었던 것 같았다. 그뿐이 아니었다.

아빠의 경험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더니

아이도 학교나 학원에서 있었던 일이나 감정들을 숨김없이 이야기해 주었다.

그때마다 느낀 아이의 표정이나 반응은 옳고 그름에만 초점을 맞출 때보다는

그저 옆에서 아빠의 경험을 들려주었을 때가 훨씬 더 긍정적인 효과를 주었던 것 같았다.


아마도 아이는 자신보다 힘이 세고, 덩치가 큰 아빠도

"실수하는구나, 잘못하는구나, 나와 똑같이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구나"라고

느끼며 아빠의 경험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자기 경험과 비교하며 세상에서 가장 큰 공감과 위로를 받았던 것 같았다.



아빠의 역할을 찾기 위해 집중하는 내가 진짜 아빠가 된 것 같았다.


주변에는 집에 돌아오면 밥상머리에서부터 방으로 들어가서

눕는 순간까지 손에서 핸드폰 게임을 놓지 않는 간 큰 아빠도 있었다.

나 역시도 아빠의 역할과 자리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었지만,

엄마들과 다르게 아빠들의 역할에 대해 자문하거나 도움을 받을 만한 곳은 찾을 수 없었다.


아이와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이가 잘 먹지 않거나 거짓말을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말이다.

아직 아빠들의 육아에 대한 공론화가 부족하다 보니 비교 대상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만의 개똥철학으로 만점짜리 아빠를 자평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생각해 보면 아이에 대한 공감 능력은 아이를 낳기 전,

부모 출산 교육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산모의 진통을 완화하는 호흡법부터 시작해서

출산 당일 가족분만실에서 아이를 낳는 모든 과정을 지켜본 것은

배워 본 적 없는 육아에서 자연스럽게 아빠의 역할을 찾기 위해 책을 집어 들게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알게 된 '모아모'(모두의 아빠들이 모임)라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

함께 육아하는 아빠들과 정보를 공유하며 병원 예약과 접수를 돕는 사이트에서부터

열이 날 때 아이의 체온에 따라 알맞은 대처방안을 찾는 '열나요',

0세에서 7세까지 육아 정보 및 맞춤 놀이법을 찾아보는 '차이의 놀이'까지

다양한 육아 관련 정보도 알게 되었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아이의 학교생활에 관심을 가지기 위해 학교운영위원회와

아이의 안전한 학교생활을 위한 학교 폭력 전담 기구,

아이의 먹거리를 챙겨 보기 위한 급식소위원회 등 각종 학교 행사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지나고 보니 모든 것이 처음인 불완전한 초보 아빠였지만

아빠로서 해야 할 역할을 찾기 위해 무언가에 집중하는 내가 진짜 아빠가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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