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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디가꼬 Dec 27. 2022

알레르기 때문에 힘들죠?

좌절하는 부모들에게 희망의 메세지를

식품 알레르기

아들이 태어나서 모유수유가 거의 끝나갈 무렵, 이유식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유식은 주로 쌀로 시작하는데 그때 처음 아들에게 식품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아주 심한 알레르기가 있었다.


계란이나 우유에 한두 가지 알레르기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쌀에도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그래서 아들은 시중에 파는 이유식은 하나도 먹일 수 없었다. 병원을 찾았지만 아내는 오히려 더욱 상처를 받았다. 지역에서 제일 크다는 대학병원에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하는 말은 아래가 전부였다

"원인을 알 수 없고, 치료방법도 없다"

"할 수 있는 건 1년에 한 번씩 피검사를 통해 알레르기 유발음식을 피하는 방법뿐입니다"


궁금한 게 많았지만 따로 물어볼 때가 없었던 아내는 병원 진료받는 날만 손꼽기다렸다.

담당 의사는 만나자마자 질문세례를 퍼붓는 아내에게 "안된다, 큰일 난다, 피해라"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우리 부부는 병원만 갔다 오면 더 심하게 우울해졌다. 어차피 치료방법도 없고, 도움 되는 것도 없느니 더 이상 병원에 가지 않기로 했다.

그 후론 날마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카페에 가입하고, 민간요법을 찾아서 먹일 수 있는 이유식을 직접 만들어 먹였다. 아무 쌀이나 쓸 수도 없었고, 밥도 평균적으로 두 번씩 해서 먹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구마와 바나나를 시작으로 소고기와 닭고기 등 점점 먹일 수 있는 음식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피부 여러 곳에서 밤마다 울긋불긋 올라오는 원인 모를 발진으로 아이는 밤새 피딱지가 앉을 정도로 긁어대느라 잠을 설쳤고, 뭘 잘못 먹여서 그런가 보다 하며 엄마는 날마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부작용도 있었다. 그러던 중 우리나라에도 수도권에 음식 알레르기에 대한 면역치료와 유발검사를 시도하는 병원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면역치료와 유발검사

거리는 멀었지만 치료만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김지현 교수가 그 주인공이었다, 김교수는 알레르기와 아토피를 고생하는 두 아이를 직접 키우면서 치료방법을 찾기 위해 외국 유학길에 올랐다. 덕분에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치료방법이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치료를 버틸 수 있는 만 5세가 되어야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도시락으로 싸서 다니며 5살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아이가 5살이 될 때쯤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서울에서 김지현 교수에게 알레르기 치료방법을 전수받은 제자 중에 정민정 교수가 부산고신대학교 복음병원 소아청소년과에서 면역치료를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기뻤다. 차로 2시간 거리인 부산에서도 치료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사와 치료과정은 쉽지 않았다. 우선 피검사를 통해 알레르기 유발물질에 대한 단계를 1~5단계로 확인한 후, 비교적 단계가 낮은 계란완숙부터 치료를 시작했다. 모든 치료는 피검사, 유발검사, 면역치료 순으로 진행되었다.

첫 번째 계란완숙 치료

첫 번째 유발검사와 치료는 삶은 계란이었다.  펄펄 끓는 물에서 15분 이상을 삶은 계란 0.5g을 시작으로 3일, 5일. 7일 단위로 조금씩 양을 늘려갔다. 그렇게 계란 완숙은 통과했지만, 유지기를 가지면서 2번 시도한 계란반숙은 실패했고, 지금까지도 3번째 시도를 위해 계란완숙 유지기를 지치고 있다.

두 번째로 시작한 밀가루 치료

밀가루 역시 끓는 물에 오랫동안 삶은 소면을 0.5g에서 시작해서 최종 200g까지 매일 조금씩 먹이면서 치료를 시작했다. 아무 양념도 되지 않은 맛없는 밀가루 소면을 매일 군소리 없이 먹어준 아들 덕에 계란보다 수월하게 통과했고 유지기까지 모두 거치면서 최종통과 판정을 받았다.   

세 번째로 우유 치료

우유는 현재도 계속 치료 중이다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익힌 다음 0.2g부터 시작해서 매일 조금씩 양을 늘리고 있다. 우유는 계란과 밀가루와는 달리 아이가 먹을 때부터 거부반응을 많이 보였다. 그래서 아내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지혜를 얻어 바나나향이나 딸기향을 섞여서 먹이는데 반응이 좋았다. 이제 10g을 먹으면 우유가 첨가된 각종 과자나 양념을 먹을 수 있게 된다.  


계란, 유유, 밀가루처럼 알레르기 단계가 높은 음식 외에 간단한 자가검사나 한 번의 유발검사 만으로도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땅콩이나 조개류가 그랬다. 하지만 유발검사 실패로 멸치육수는 통과하지 못해 집 밖에서는 국을 일체 먹을 수 없다. 또 단계가 제일 높은 것이 생선류나 아직 시도조차 못하고 있어 생선어육으로 만든 소시지나 게맛살, 어묵도 먹을 수 없다.


경험을 통한 희망의 메시지

그런 아들이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즐거워하는 아들을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초등학교는 인원이 적은 어린이집에 비해 알레르기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금껏 아이가 큰 거부감 없이 주는 데로 매일 일정량을 잘 먹어 주었고, 간호사 출신인 아내가 옆에서 꼼꼼하게 챙겨 비교적 치료가 잘 진행되고 있다. 현명한 아내의 기지 덕분에 아이는 당당하고, 자존감 높은 아이로 잘 자라고 있고, 그런 가족 덕분에 나는 아직도 눈이 오면 기뻐하고, 크리스마스를 애타게 기다리는 젊은 중년으로 살고 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추운 겨울 서로의 체온에 의지한 체 생존하는 에스키모인들처럼 따뜻한 가족애를 느끼며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식품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를 육아하면서 느낀 것은 삶의 순간이 매번 선택의 연속이긴 하지만, 보낼 수 있는 어린이집부터 먹일 수 있는 음식, 치료방법과 시기에 이르기까지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많은 선택이라는 기로에 선다. 하지만 이런 선택 앞에서 주저하는 부모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나 사회적 배려와 관심 부족은 더 고통스럽게 만든다.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달라지면서 원인 모를 식품에 대한 알레르기 환자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완치시기도 예전과 다르게 점점 늦어지고 있는 추세다.


나는 식품 알레르기 앞에 좌절하는 많은 부모들에게 우리 부부가 겪은 소중한 경험들을 글로 쓰면서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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