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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리고딕 Oct 22. 2023

병약했지만 최전선 전쟁터를 지켜낸 황제

로마 16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그다지 건강하지 못한 몸이었지만 황제의 짐을 지고 여러 해를 가장 거친 전쟁터에서 보내며 전쟁으로 인한  자신의 지친 심신을 달래고 자칫 스스로 나태함에 빠질까 항상 경계하면서 생각이 깨어있도록 스스로 노력하기 위해 명상집을 남긴 로마의 황제


로마의 황제 하면 향락과 사치가 떠오를 수 도 있겠다. 향락과 사치가 절정이던 시기의 로마는 언제나 절대강자일 것 같은 자만심에 빠져 이제 성장하지 못하고 기울어지기만을 기다리던 쇠퇴기로 접어든 시기였었지만 로마가 세계지배자로 무섭게 떠오르기 시작하며 절대강자로 솟아오르던 시기의 이 황제는 가장 힘든 장소를 찾아서 전쟁터의 자리를 지키며 병약하기까지 한 몸으로 자신이 나태해져 나라가 위기에 빠질까 봐 자신을 경계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었다.


전쟁터에서 수년간의 자신의 지질대로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한 쓴 그의 글은 후대에는 명상집으로 남겨졌다. 황제이면서 금욕과 절제로 대변되는 스토아학파의 철학자이기도 한 그의 인상적인 리더십과 치열한 자기 고민이 우리 시대에 참 보기 힘든 절제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가 남긴 명상집의 명언 중 ' 쾌락은 어떤 한계를 넘으면 형벌이 된다 ' 은 절제하지 못하고 넘지 말아야 할 경계선을 넘는 인간에 대한 경고일 뿐만 아니고 비단 사람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닌 앞으로의 로마제국에서도 로마의 통치능력을 넘어서며 제국을 확장하려고만 하다가 로마가 더 이상 통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갈라지고 대제국의 위상이 허망하게 무너져갔던 로마의 운명에 대한 경고로도 들린다. 또한 오늘날에도 부를 향한 욕심이 과해서 부정이 저질러지고 쾌락을 좇다가 무너져 버리는 유명인들의 몰락도 이 한 줄의 경고가 잘 설명하는 것 같다. 


보통사람들이 열심히 쫓으며 사는 부와 명예가 어찌 보면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의 글처럼 일정 수준까지는 인간을 이롭게 하고 더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스스로가 부와 명예를 컨트롤하지 못하는 한계 수준을 넘어 중독단계로 가면 인간에게 형벌도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2천 년 전에 인간의 욕심으로 인한 그 경계선을 미리 깨달아서 한계점을 볼 수 있었던 이 로마의 현인이자 황제이자 철학자는 절제를 계속 지키려 죽기까지 전쟁터에서의 전투하는 것처럼 정신적 전투를 계속 벌였던 것 같다. 


근데 역사가들을 이런 그를 '지나치게 규칙에 얽매이고 지루한 인물'로 매력이 없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오늘날 마음껏 향락을 추구하는 것을 멋지다고 칭송하는 세대에게는 이 고리타분할만큼 금욕적인 인물이 왜 죽을 때까지 절제하려 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역사가 헤로디아노스는 그를 이렇게 기록하였다. 

황제들 중에 유일하게, 그는 몇 가지 말이나 철학적 교리의 지식이 아닌  비난할 점이 없는 인성과 생애의 절제된 방식으로 자신의 학식을 삶으로 증명해 냈다.


그의 사후 그를 이어받은 코모두스에 의해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고 지켜온 가치들이 헌신짝처럼 버려지고 만 것이 아쉬운 처사일만큼 역사상 그는 최고의 권력의 자리에서 자신의 욕심을 마음껏 무리고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절제 속에서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고 로마를 통치한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만약 그를 바로 이은 후대가 그의 정신을 좀 더 오래 지속하였다면 이후의 로마의 제곡의 통치 기간도 더 길어졌을 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로마이기에 자랑스러운 여러 가지 것들 중 5 현재의 힘, 그중 절제된 황제의 리더십을 보이며 수년간 험한 전쟁터의 최전선에서 로마를 지켜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화제상은 로마시민들의 뇌리에 강하게 새겨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후대 황제들의 모습에서 절제와는 거리가 먼 향락이 과하게 보일 때는 은연중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쾌락은 어떤 한계를 넘으면 형벌이 된다 는 말이 예언처럼 작용했을지 네로 등이 비참한 결말을 맞게 된다.

고대 로마제국 시절 귀족들이 놀이를 위해 별장을 짓고 퇴폐적인 부패가 만연했었던 폼페이는 어떠했었나.

로마의 속국에 된 이후 평범한 도시 폼페이가 귀족들의 휴양지로 바뀌며 현대판 호화도시로 변모 후 풍족해진 이후에 각종 위락시설과 윤락시설이 넘쳐나기  시작하면서 베수비오 화산이 터져 도시는 멸망하게 된다. 


작은 마을이던 폼페이시절 도시가 잿더미로 변해 망했다면 오해하지 않았을 수 있는 데 하필 폼페이지가 로마의 귀족들이 별장을 지으러 몰려와 고대의 거대한 향락 도시로 변모된 이후 도시가 잿더미로 변해버렸으니 오해 아닌 오해가 있을 수 있게 돼버렸다. 세계 유수의 리더들이 그의 명상록을 읽어보고 그의 팬이 되는 것은 2천 년 전의 황제의 글을 현대에 비추어 보니 2천 년 넘는 시간 동안 벌어진 역사적인 일들이 그의 글이 예언서처럼 시대에 맞는 옳은 말로 가득한 까닭일 것이다. 


당시에 고리타분하다고 치부할 수 있는 글귀가 그의 사후 2천 년 넘는 시간 동안 마치 그의 사후의 역사를 미리 보고 거기까지 고민하며 작성된 것처럼 인간사에 대한 통찰이 묻어나니 신기할 따름이다. 역사는 잘못된 것은 반복되지 않아야 하는 데 좋은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 아닌 잘못된 역사도 반복되니 심히 문제라 알려고 하는 노력이 부족해 역사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2천 년 전의 그의 지혜를 빌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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