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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성인 Aug 15. 2023

우울한 행복

교차되는 감정 - 2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장난 섞인 표정으로 다가오는 그녀에게 맞장구를 치는 느낌으로 나는 대답했다.
“배고프다”

 내 옆에 앉으며 그녀가 말했다.
“먹고 싶은 거 있어?”
“찬준은 뭐 먹고 싶어?”
“상관없는데”

 그다지 배고프지 않았다.
“어제 먹은 거 뭐야?”

 스테파니는 트렌치코트 주머니에서 립밤을 꺼내 자기 입술에 발랐다. 다시 주머니에 립밤을 집어넣고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볶음밥”
“어디서?”
“내가 요리해 먹었어”

 자취방에서 자주 해 먹는 요리다. 즉석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리지 않고 날계란과 함께 식용유를 두른 프라이팬에 볶은 뒤 간장과 굴소스를 적당히 뿌려 요리해 먹는다. 가끔 기분이 좋을 땐 파기름을 내기도 한다. 어젠 어설픈 정육면체로 자른 햄조각과 함께 볶아먹었다.
“찬준 요리 잘해?"

 그녀가 질문했다.
“잘하지 않아. 좋아하지”
“왜?”
“왜 잘하지 않냐고?”
“그게 아니고 왜 좋아하는 거야?”

 내게 질문하기 전 스테파니는 피식 웃었다. 말귀를 못 알아먹었던 내가 웃겼나 보다.
“안 좋을 이유 없잖아? 나를 위하는 행위인데”

 학부사무실 유리문을 열고 나오는 중년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무신경하게 스테파니 쪽을 한번 쳐다보곤 1층으로 내려갔다.
“요리는 나를 위한 선물이니깐”
"엥 어떤 선물?"

 의아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요리라는 건 음식을 만드는 하나의 과정이잖아? 그 과정엔 수고스러움이 필수적이야. 불 앞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깐. 재료 생각하고 챙기고 그런 일이 귀찮기도 하고. 그런데 그런 수고를 통해 만든 요리는 온전히 나를 위한 식사가 되지. 나만을 위한 행위는 결국 나를 위한 선물이고 혼자 사는 인간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만큼 소소한 기쁨은 없으니 요리는 결국 나를 위한 선물인 것과 마찬가지지"


 의자에 앉아 두 손을 양 무릎에 올려두고 스테파니와 바닥을 번갈아 쳐다보며 이야기했다. 못 알아들을까 봐 천천히 이야기했다.
"우음 난 요리 잘하는데 그렇게까지는 생각 안 했어"

 그녀는 우물거리며 말했다.
"요리사들은 원래 큰 생각 안 하고 요리하잖아. 직업이니깐 익숙해진 거지. 스테파니도 잘하는 만큼 익숙해진 걸 꺼야"
"맞아 그런 거 같애"

 그녀는 싱긋 웃었다. "찬준 요리할 때 뭐 좋아해?"
"라면 끓여 먹는 거 좋아해"

 어떤 요리하는 걸 좋아하냐는 물음인 것 같았다.
"에?"
"말은 그렇게 해도 편하게 해 먹는 요리가 제일 좋더라"
"뭐야 거짓말쟁이야"

 그녀는 장난스럽게 나를 흘겼다. "근데 찬준 혼자 살아?"
"응"
"기숙사?"
"아니 자취해"
"찬준 아직 어린데 벌써 자취해?"
"통학은 싫고 기숙사는 더 싫어서"

 아직 어리다는 표현이 묘하게 거슬렸다.
"혼자가 어울리긴 해 찬준은"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며 트렌치코트 밑단을 정리했다. 검정 로퍼를 신고 있었고 복숭아뼈가 보였다. 작았다.
"가자 우리"

 그녀가 당차게 말했다.
"어딜?"
"나 찬준 요리 먹을래. 요리해 줘"
"내 자취방을 가자고?"

 웃겼다.
"라면은 안돼. 맛있는 거"

 그녀는 웃었다. 보조개가 보였다.
"그래 그럼"

 나도 웃었다. 그녀의 웃음 때문이 아닌 그녀의 자취방이 어딘지 이미 알고 있어서 웃었다. 도착했을 때의 짓는 그녀의 표정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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