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내 가슴에 나비처럼 날아와서~"
삼촌 방에서 현철의 [사랑은 나비인가 봐] 노랫소리가 들린다. 그리곤 그 노래가 끊임없이 반복 재생된다.
다행이다. 지금은 삼촌의 조증 시기인가 보다.
우리 삼촌은 정신장애 1급이다.
아빠의 막냇동생이고, 올해 예순여섯이다. 오랜 기간 정신과 약을 먹어서인지 인지기능이 많이 떨어져 일상생활하는 데도 입력값을 넣어줘야 실행하는 상태이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삼촌을 처음 봤다. 삼촌은 시설에 입소해 있다가 탈출하듯 택시를 타고 우리 집으로 왔다. 늦은 밤, 택시기사님이 대문을 두드렸고 상당한 금액의 택시비를 지불한 기억과 택시기사님 뒤에 멀찍이 떨어져 쭈볏되던 삼촌의 모습이 생각난다.
하루는 삼촌 방을 청소하려고 들어갔다.
삼촌은 "청소하지 마! 저기 사람들 자는 데 청소하면 혼나." 나가라는 듯 내 몸을 문 쪽으로 밀면서 말했다.
"저기 누가 있는데?"
"아~ 글쎄! 지금 청소하면 깨니까 이따가 해" 하길래 알겠다고 하고 방에서 나가 주었다.
또 어떤 날은 삼촌의 식탁 지정석에 앉기 싫다고 다른 의자에 앉아서 식사를 하길래 왜 그러는지 물으니 "저기 사람이 앉아 있잖아! 피해 줘야지" 한다.
이쯤 되니 그곳에 진짜로 사람이 있는데 내가 못 보는 건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삼촌은 작은댁에 일을 조금씩 도와드리고는 많은 시간 거의 낙서를 하면서 보낸다.
장애가 오기 전엔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했다고 들었는데, 낙서에는 그때 지었을법한 아파트의 사이즈와 도면 이런 것들을 반복해서 그리고 또 그린다.
삼촌은 약을 먹지 않으면 밤잠을 한숨도 잘 수 없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야 한다.
내가 영월로 오기 전, 엄마가 삼촌과 둘이 살 때 아침에 병원을 보냈는데 글쎄 아직도 집에 안 들어왔다며 애가 탄 엄마가 전화를 하셨다.
돈도 차비만 줬는데 혹시 누구한테 잡혀간 건 아닌지, 길을 잃어 헤매는 건 아닌지 온갖 상상을 하게 된다. 밤 열한 시가 되어 집에 들어왔다는 연락에 일단은 집에 들어왔으니 간신히 가슴을 쓸어내린 적도 많다.
내가 온 후로는 병원에 모시고 다니는데...
삼촌은 무엇이 그리도 답답해서 하루 종일 배회하며 다녔을까.
또 울증일 때는 우기와도 같다. 몇 주간 뚱한 표정으로 말도 잘 안 하고 밥도 아주 조금만 먹는다.
아프냐고,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도 아니라는 대답만 할 뿐 그 시기엔 삼촌의 우울이 너무 깊어 나도 아니 온 집안이 침울해진다. 그때는 삼촌이 잔소리들을 일을 해도 꾸욱 참고 기다려준다.
나는 삼촌을 좋아한다. 삼촌이 장애가 없었다면 가정도 꾸리고 지금쯤 손주를 볼 나이인데...
장애가 있어 혼자일 수밖에 없는 삼촌이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엄마가 시집을 왔을 때 삼촌은 기어 다니는 아기였다고 한다. 장애가 오기 전의 삼촌 모습을 아는 엄마는 삼촌의 삶을 너무 속상해하시며 형수이지만 엄마처럼 잔소리를 하신다.
삼촌은 말투부터 행동 하나하나가 다정하다. 삼촌에게 나는 귀여운 막내조카이면서 어쩔 땐 보호자, 또 어쩔 땐 딸이 되어주고 싶다.
삼촌이 자신의 몸을 추단 하지 못해 내가 도저히 내 힘으로 케어가 힘들기 전까지는 삼촌이 해주는 따뜻한 말을 들으면서, 삼촌이 좋아하는 커피 마시러 다니면서 같이 살고 싶다.
요즘엔 삼촌이 식탁 지정석에 앉지 않을 때면 '삼촌, 이 자리에 또 누가 앉아있어?' 묻고는 너스레를 떤다. '아니! 여기 우리 삼촌 자리인데, 비켜주세요! 삼촌 앉아야 해요!!!'
그리고는 '내가 가라고 해서 갔지? 얼른 삼촌 자리로 와서 밥 먹어요!' 하면 삼촌은 웃어주다가 끝내 자리를 옮기지는 않는다.(하하, 여전히 그분은 그 자리에 계신가 보다.)
장애가 있는 삼촌과 사는 것.
그런데 살아보면 장애가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도 생각나지도 않는다. 조증일 땐 조금 시끄러워도 환하게 웃는 얼굴 보며 지내고, 울증일 땐 기분전환도 시켜주고 우울함이 빨리 지나가길 기다리면서 그렇게 일상을 보낸다. 물론 힘들 때도 있고 애타는 일이 조금 많이 생기긴 하지만,
삼촌은 그냥 내 삼촌! 어쩔 땐 내가 삼촌을 지켜주는 게 아니라 삼촌이 나와 엄마를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늘도 우리 가족은 다정한 몇 마디 말을 주고받으면서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