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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만 열 명이었던 우리 집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by 두움큼

아빠 쉰 살, 엄마 마흔두 살이었던 팔십육년 시월 오일 열 번째 딸 바로 내가 태어났다.

아들이던 딸이던 이번이 마지막이다! 결의를 다지고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말자는 선언이 무색하게도, 이번에도, 마지막까지 또 딸이었다.


엄마는 열일곱에 시집와서 열아홉에 큰 딸을 낳았다. 그리고 마흔두 살에 나까지 딸만 열 명을 출산했다.

그 시절에는 집집마다 자식을 많이 낳기도 했고, 아들을 귀하게 생각했던 때였다. 더구나 장남인 아빠에게 아들은 꼭 있어야 한다는 할머니의 극성스러운 성화에 아들 하나 낳아보려다가 딸만 열을 낳았다는 웃픈 이야기.


첫째 딸은 살림밑천, 둘째 딸과 셋째 딸은 세 자매지간이니 그때까지는 괜찮았을까. 야속하게도 넷째도 딸, 다섯째도 딸, 여섯째도 딸, 일곱째도 딸, (이쯤 되면 나라도 오기가 나서 포기 못하고 계속 도전했을 것 같기도 하다.) 여덟째도 딸, 아홉째도 딸, 진짜 마지막 열 번째도 딸.

어쩜 열 명 모두 딸만... 하늘도 무심하셔라. 우리 엄마아빠에게 아들 한 명 주시는 게 그렇게 아까우셨을까?


내가 초등학생이던 어느 날 아빠는 나를 꼭 안고서 고백했다.

해볼 도리가 없는 절망감에 술을 진탕 먹고 갓 태어난 열 번째 딸을 뒤집어 놓을 심산으로 방에 들어갔다고. 그런데 어찌나 발을 버드덩거리면서 울던지 그 핏덩이를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다고 말이다.

(휴- 그때 발을 잘 써서 다행히 살았다.)

인력으로 안된다지만 계속해서 딸만 낳으니 얼마나 좌절하고 원망스러웠으면 그런 생각을 하셨을까 싶어 어린 나는 충격보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아무 말없이 아빠를 바라봤다.

아빠가 이 이야기를 해주신 이유도 네가 없었더라면 어쩔뻔했냐 너를 잃어버리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안도의 말씀으로 생각한다. 왜냐면...




엄마는 아들도 못 낳는다고 시집살이를 고되게 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아픈 것은 엄마아빠 가슴에 다섯 명의 딸들을 묻어야 했다는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하늘나라로 간 둘째 딸.

어릴 때 화상을 크게 입어 떠난 셋째 딸.

동생들을 구조하고(나와 내 바로 위의 언니) 강물에 휩쓸려간 여덟째 딸.

시집갈 날을 받아두고 사고로 떠난 다섯째 딸.

갑작스러운 희귀병으로 떠난 아홉째 딸.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늘나라로 간 두 명의 언니는 모르지만, 나를 구해주고 떠나간 언니부터 세 명의 언니는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때 엄마아빠의 모습까지.

오랜 침묵이 있었다. 그 오랜 침묵을 같이 견뎌야 했다. 어떤 말도 없이 그저 꾹꾹 눌러 담았을 슬픔에 부모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흔적 없이 뭉개지셨겠지.

그래도 살아야 하기에 억지로 그리고 간신히 그 아픔을 묻어 놓으셨을 것이다.

그래서 원래 나는 열 번째 딸이었는데 지금은 다섯 번째 딸이 되었다. 이제 딸부잣집 타이틀을 쓰기는 애매한 다섯 자매만 남아 버렸다.


딸만 열을 낳느라고 온갖 설움에 마음고생하신걸로도 모자라 자식을 다섯이나 먼저 보낸 우리 엄마아빠의 세월.

그리고 동생들을 잃은 언니들과 언니들을 잃은 동생들. 남은 우리 자매들은 서로가 서로를 말없이 위로하며 버텨주고 있다. 때로는 얼굴은 웃고 있지만 눈은 울면서.




엄마는 해 질 무렵 멀리서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를 좋아하신다.

"올해는 어째 뻐꾸기가 더디 오는가 보다." 하시더니 기다리던 뻐꾸기가 울면 마당에 앉아 뻐꾹뻐꾹 구슬피 우는 소리를 한참 듣고 계신다.

그 울음소리가 얼마나 쓸쓸하고 애잔한지.

뻐꾸기가 엄마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엄마 대신 울어주는 것 같아서,

그래서 좋아하시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이 글을 쓰면서 몇 번이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복받치는 울음을 참지 못해서 한참을 엉엉 울기도 했다.

쓸데없이 좋은 기억력은 그때의 장면과 표정까지 각인되어 살면서 자주 생각나곤 했다.

슬퍼하는 어른들을 가만히 지켜보던 어린 시절, 말없이 울기만 했던 내가 이렇게 글을 쓰며 마음속에 들끓는 소란과 울분을 조금은 풀어내고 있는 것 같다. 이제라도 글을 안 썼더라면 서글프고 송곳 같은 이 아픔들을 어떻게 했을까.

글을 쓰기 시작하며 '내 안의 나'가 조금씩 위로받고 있다고 느껴진다.



아, 왜 우리 엄마아빠를 외면하셨나요! 신에게 따져 묻고 싶다가도 만약 아들이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을까 싶어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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