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넘은 엄마와 마흔 살 막내딸의 꽁냥꽁냥
교복 입혀 학교 보내던 딸이 장성해서 회사에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기쁘셨을까?
엄마는 출근 준비하는 막내딸을 가만히 지켜보며 그날 입은 옷이 본인 보시기에 어떤지 평가를 해주신다.
핏이 조금 널널한 원피스를 입은 오늘은 "끈으로 허리를 묶어서 잘록하게 입으면 더 예쁘겠다." 하신다.
그간 딸의 의상에 대한 엄마의 평가는 꽤나 예리했다.
"어디 그런 옷이 있었니? 세상 간단해 보인다.", "그 쓰봉(바지)를 입으니까 늘씬해 보인다."며 칭찬도 해주시고, "차라리 거기에 치마를 입는 게 더 낫겠다." 조언도 해주신다.
어떤 날은 벌써 날아와야 할 피드백이 없으면 내심 오늘 옷은 별로 인가 싶어 "엄마, 오늘 나 어때?" 물어보기도 한다.
용돈보다 예쁜 옷 선물 받는 걸 더 좋아하는 우리 엄마.
가실 곳이래야 경로당 밖에 없지만 엄마도 내게 묻는다. "오늘 이걸 입을까? 저걸 입는 게 나을까?"
이제는 서로의 안목을 믿어주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아빠를 많이 좋아했다.
아빠는 항상 나를 업고 다니시며 둥가둥가 오냐오냐 하셨고 아빠가 나를 부르는 애칭은 '토끼’ 여서 지금까지도 동네 어르신들은 나를 '토끼'라고 부르신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돼서도 티비를 볼 때면 꼭 아빠 무릎 위에 앉아서 보곤 했다.
엄마한테 혼나는 날이면 아빠는 나의 방패가 되어 무릎 위에 앉은 나의 온몸을 한 껏 안아주셨다.
누가 봐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내 위의 언니보다 쉰둥이 막내딸인 나를 편애하신 그 사랑을 복에 넘치게 표현받아서인지
나는 엄마보다(엄마도 좋지만) 아빠를 더 좋아했다.
그런데 내가 스물셋이 되던 해 봄에 아빠는 갑작스럽게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도, 아직도.
아빠는 내 눈물버튼, 내 사랑, 내 그리움.
아빠만 아빠만 했던 막내딸이,
사실 우리 자매들은 모두 아빠를 많이 좋아했었기 때문에 이제는 딸들이
엄마를 더 챙겨보라고 먼저 떠나셨나 싶은 생각이 스친 적도 있다.
그 생각이 맞았을까?
나는 아빠를 잃은 고통과 아픔의 크기가 너무나도 커서 이렇게 엄마 곁을 지키러 오게 된 것 같다.
어느새 허리가 꼬부라진 엄마는 특히나 치마 입은 날의 나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신다.
젊은 날에 짱짱하고 곧은 허리로 농사만 지으시느라 멋도 못 부리고 치마도 맘껏 못 입어 봤을 우리 엄마.
“내가 허리만 안 이래도 치마를 입고 다니는 건데...”
아쉬움 가득한 엄마의 목소리가 가엽고 애잔해서 내 가슴이 울렁거린다.
그런 엄마 앞에서 치마 입기가 괜스레 미안해지다가도 나는 또 새로 산 원피스를 입으며 “엄마 나 어때?” 하고는 재롱을 부려본다.
엄마는 “어떠긴 뭐 어때! 예쁘지!” 하고 웃어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