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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러니까 저희가 인간극장 출연 섭외를 받은 건가요

by 두움큼


글을 쓰겠다고, 나의 이야기를 풀어 가겠다고 마음먹고 처음으로 브런치에 글을 발행했다.

하루가 지나서 한 방송국 제작진이 나의 글을 인상 깊게 보셨다며 연락을 달라는 놀랍고도 반가운 댓글이 달렸다.

알고 보니 무려 인간극장 출연 제의를 받은 것이다.

역시는 역시! 나의 프롤로그만 읽어도 ‘딱 인간극장 각이다.’ 알아보셨으니 말이다.


허리굽은 팔순 할머니 우리 엄마, 장애가 있는 막내삼촌, 고양이 두 마리, 강아지 한 마리, 그리고 제주에서 영월로 귀향한 마흔 살 막내딸.

이것만으로도 인간극장의 소재가 되기에 충분할뿐더러

이런 우리가 복작복작 사는 이야기를 담아낸다면 정겹고도 울림 있는 한 편의 인간극장이 되었으리라.




우리 엄마에게는 열아들 안 부러운 첫째 딸이 있다.

우리의 이야기에 엄마의 큰 딸이 빠질 수 없는 것은 엄마의 자랑이자 우리 집 주장이고, 나에겐 둘도 없는 친구이면서 엄마보다 더 엄마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큰언니와 나는 24살 차이가 난다.)

언니는 젊은 시절 맨땅에서 시작해 대기업 화장품브랜드 상무까지 올라갔고, 그 후에는 제주로 가서 이름만 대면 다 알 정도로 유명한 식당을 운영했다. 그때 나는 제주에서 언니네와 함께 살았는데 그 덕분에 대감집 애기씨처럼 부족함 없는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언니는 엄마가 어깨를 피고 의기양양하실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고 나는 언니가 고맙고 좋았다.(구체적으로 언니의 배포와 강단, 정성을 다하는 태도, 깊이 있는 생각과 언어, 언니의 손길이 좋았다.)


우리가 엄마의 병명과 상태를 인지하고 제주에서 영월로 귀향하는 데 있어 결정적 결심을 하게 된 이유도 바로 언니의 결단과 추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언니가 운영하던 식당은 고액의 권리금을 받고 인계한 시점이었고, 언니의 아들과 손주들 이슈가 있어 이래저래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지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거의 이십 년 가까이 살았던 제주를 떠나 와 엄마와 삼촌을 모시고 살면서 영월에 점차 정을 붙이고 있었다.(언니는 형부와 아들집에 본거지를 두기는 했지만 거의 영월에서 함께 있었다.)


그런데 올해 초, 눈이 소복이 쌓이던 일요일. 집 앞마당 눈을 쓸다가 언니가 넘어졌다.

살짝 넘어진 것 같았는데 참 우습게도 고관절이 골절되어 바로 수술을 해야 했다.

제주에서 전해 내려오는 말 중에 “제주서 돈 벌어 육지 나가 살면 쫄딱 망한다.”는 말이 있더니 우리가 그 비슷한 꼴을 당한 건가?

이제 육십이 넘은 나이지만 아직도 눈빛은 장난기 가득한 애기같은 우리 언니한테.

승마, 스노클링, 라이딩 운동은 또 얼마나 좋아하는데 우리 언니한테 어쩌다 이런 가혹한 일이 생긴 건지 암담했지만 언니는 이미 벌어진 일 앞에 의연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언니는 수술 후 병원에 있었고, 나는 언니 간병에

밥만 할 줄 알던 내가 엄마와 삼촌의 삼시세끼 식사 준비에 집안일까지 갑자기 모두 내 몫이 되어 몸도 마음도 혼미해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삼촌이 일을 하다 그만 두피가 찢어지는 사고가 있어 급하게 응급실로 달려가느라 애간장이 녹았고,

길고양이와 한 판 대차게 싸우고 온 건지 치즈(우리집 마당냥이) 다리에 피떡이 져서 부랴부랴 동물병원에 데려가야 했다.

언니, 삼촌 간병도 모자라 고양이 간병까지. 그리고 하필 회사에서 내 업무가 가장 바쁜 시기였는데 일은 일대로 해야지 집에 내 손은 필요하지 휴가를 쪼개 써가면서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그러다 나도 병이 났다. 새벽에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는데 세상이 빙글빙글.

미식거리고 울렁거리고 머리가 돌아가서 움직일 수가 없는 이석증이 생기고 말았다.

귀향한 지 지난 일 년 반동안 정작 엄마와 오손도손 손을 마주 잡고 이야기하는 그런 여유가 있으래야 있을 수 없는 사건의 연속이었다.




누가 만들어 낸 이야기처럼 제주에서 영월로 온 신고식을 호되게 치렀다.

나의 고군분투한 이 이야기가 인간극장에 방영되었다면 제목은 아마도 ‘다이내믹 oo씨의 귀향이야기’ 쯤이 되지 않을까?

그런데 인간극장 섭외는 너무나도 감사하고 영광이지만, 공중파 방송에 출연자로 나간다는 것은 나와 가족들이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언젠가 엄마를 영상으로 남겨놓을 껄하고 후회되지 않도록 어느 정도 안정을 찾으면 함께 해주십사 보류 의사를 밝혔다. 그땐 또 우리 가족에게 어떤 일들이 있을까 기대반 걱정반이지만!


일단은 브런치에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중입니다.' 를 연재하며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 가려는 중인데

"네! 저희 인간극장 출연 섭외 받았어요!" 하고 나에게는 영웅담쯤으로 길이 회자될 이야기를 자랑하고 싶었다.

내일도 오늘과 다름없어 감사한 하루가 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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