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람들
요즘은 대학 시험 기간이다. 4월이 되고부터는 저녁이고 주말이고 과제 내느라 공부하느라 너무 바쁘게 보냈다. 하루하루가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2학년이 되고 나서 배우는 교과목들은 흥미롭고 재밌지만 그래도 과제는 싫고 시험은 안 보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아무것도 안 하고 유유자적 쉴 때도 있었다. 대전 집 근처 좋아하는 카페에서 멍 때리거나 글을 쓰거나 하면 다시금 공부해야 될 것 같고 할 수 있을 것만 같고 그런 마음이 들게 된다. 드라마 틀어두고 집안일하거나 공부하기도 해 봤는데, 새로운 드라마를 시작하는 것도 좋지만 예전에 본 명작을 다시 보는 재미도 쏠쏠한 것 같다. 최근 다시 본 드라마는 비밀의 숲 시즌1과 2이다.
비밀의 숲 주인공은 황시목 검사인데, 어린 시절 '뇌섬엽(insula lobe)'의 일부를 제거해,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냉혈한 검사로 나온다. 당시에도 이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던 기억이 있다. 드라마 배우진들도 연기도 너무 좋고 말이다. 최근에는 학교에서 '신경과학'을 주로 배우다 보니 '뇌섬엽 제거'라는 드라마 설정을 곱씹게 되었다. 주인공이 뇌섬엽 수술을 했었구나. 아는 만큼 보이나 보다.
우리의 뇌는 앞뇌, 중뇌, 후뇌로 나눌 수 있는데 앞뇌에는 '대뇌'와 '사이뇌'가 있다. 여기서 중뇌와 후뇌는 따로 건드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앞뇌로 구분되는 '대뇌'가 중요한데, 이러한 대뇌를 해부학적인 6가지 엽으로 다시 나누면 이마엽, 마루엽, 관자엽, 뒤통수엽, 뇌섬엽, 둘레엽이 된다. 이 중에 뇌섬엽의 일부를 제거했던 거다. 뇌섬엽은 어떤 역할을 할까?
잘 알고 있다시피, 감정과 관련된 역할을 하는 부위이다. 보통은 우리가 갖는 '감정'들이 생성되고 시작되는 부위는 대뇌와 사이뇌 경계의 변연계라는 곳이다. 본능적이고 빠른 감정들이 나타난 뒤에, 이 감정들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건 다 뇌섬엽 덕분에 가능하다. 내 몸 상태를 느낀 후, 이러한 감정이구나라는 것을 '의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거다. '속이 안 좋다'라고 신체가 느끼면 뇌섬엽에서 '불안하다'는 감정으로 내보내고 해석하는 것과 같다. 역겨움, 불쾌, 공감 등의 내면 감정에 민감한 부위가 뇌섬엽이다. 실제로 비밀의 숲 주인공처럼 뇌섬엽이 손상된 환자들은 타인의 감정 표정을 잘 읽지 못하며,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조차 잘 모른다고 한다.
감정표현불능증(alexithymia)을 겪는다고도 말하는데, 주인공은 수사 과정에서 아끼는 후배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조차 이성적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보인다. 겉으로는 동료들에게 그런 이성적인 모습을 보였고 스스로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슬픔이라는 감정을 신체는 느끼고 있었기에 이후에 큰 두통과 현기증으로 그 감정을 드러냈다.
황시목은 수술 때문에 감정을 잘 읽지 못해서 동료나 상사들과의 사회생활이나 수사 과정에서 감정은 배제한 채, '이성적 판단'을 위주로 행동하게 된다. 그로부터 보이는 주변인들의 반응이 이 드라마 나름의 킬링 포인트가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후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동료애도 생기고 우정과 같은 감정을 배우며 타인을 인식하는 태도도 변하기도 한다. 수술 때문에 감정에 있어 제약이 있었지만, 배움으로써 사람을 이해하고, 누군가를 돕는 존재가 되는 과정이 보이는 게 범인이 누구였더라 하는 궁금함보다도 새삼 재밌었던 것 같다.
뇌섬엽이 멀쩡한 사람이라면 감정 정도는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겠으나, 그럼에도 감정을 깊게 이해하는 건 계속 배워야 가능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뇌섬엽 환자를 치료할 때도 손상된 기능을 직접 복원하기보다는 감정 인식과 공감 반응을 '훈련'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때때로 우리는 감정이라는 것에 휩싸여 어쩔 줄을 모른다. 그런데 감정도 배울 수 있는 의식의 영역이기도 하므로 오늘 하루는 어떤 감정을 느꼈나 혹은 느낄 건가 와 같은 선택의 맥락으로 여기면 좋은 것 같다. 그렇게 감정을 잘 '읽어낸다면', 나와 타인 모두를 이해하는 시도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