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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에서 1까지

마음에도 관성이?

by 코코아

이번 주는 봄방학 같은 자유시간을 보냈다. 시험기간에 자극적인 음식을 너무 먹은 것 같아 디톡스를 핑계로 포케를 시켜 가족들과 먹거나 뒹굴거리다가 낮잠도 푹 잤다. 지인 결혼식에 가서 축하도 열심히 하고, 송도에 나들이도 하고 왔다. 오랜만에 3일 내리 집에 콕 박혀 있기도 했다. 쉬어서 좋은데 종종 우울 모드가 되었다. 오늘은 친한 친구 Y와 만나 합정과 홍대 거리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왔다. 수다도 꽤나 떨었지만, 옷 구경도 정말 많이 하고 사람 구경도 많이 했다. 대전과는 사뭇 다른 풍경임을 알고 있었지만, 새삼스레 감탄하게 되는 인파였다. 다들 봄이라 놀러나왔나보다. 대전에 사는 나도 서울로 놀러 나왔으니 말 다했지 뭐.


열심을 다하다가 푹 쉬거나 놀다 보니 좋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좋은 순간은 항상 찰나였으며, 행복한 찰나를 만들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들과 마무리하는 시간들이 뒤따랐다. 3일 내리 나를 OFF 시킨 건 노는 것보다 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였다. 다음 주부터 다시 바빠질 거기 때문에도 그렇고.


동기들이랑 시험 기간에 공부를 하고 있었다. 잠깐 쉬다가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괜히 하기 싫을 때는 우스갯소리로 이거 '관성의 법칙'이라며 하하 호호거렸다. 때로는 그럴 때도 있다. 공부 잘 되고 있는데 누가 건드린다면? 서로 미안해한다. 이렇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관성의 법칙'. 정지한 상태는 그대로 정지하려 하고, 움직이던 것은 그대로 움직이려는 성질. 마음도 그런 게 아닐까? 열심히 달리다 쉬게 되거나, 잘 쉬다가 다시 시작해야 할 때 우리가 느끼는 심리적 저항감 말이다.


재밌으니 숫자로 표현해 보자면, 바쁜 상태는 3의 속도로 멈추는 건 0의 속도라고 하자. 0의 속도가 1의 속도가 되려면? '속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반대로 3의 속도가 2의 속도가 되려면? 이때도 '속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관성은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성질이다. 이러한 관성을 바꾸려면 속도를 바꿔야 한다. 속도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하면, 힘이 필요하다. 내부의 결심이든 외부적인 상황이 든 간에 어떠한 힘이 작용해야 드디어 속도가 변하기 시작한다.


0에서 1로, 점차 2로, 3이 되는 거다. 우리가 시작하기가 어려운 이유다. 그러니 일단 시작해서 적응이 되었다면? 반은 온 거다. 이후로는 관성이 어느 정도는 도와주기 때문이다. 1로 지속하든, 2의 상태로 지속하든 간에 그 상태를 유지하게 해 준다. 반대로 3에서 2로, 점차 1로, 다시 0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 결정이든 외부의 상황이 변해 힘이 작용하면 3에서 점점 0의 상태로 변하게 되는 거다. 그러한 0의 상태에 우리는 또 금세 적응을 한다. 갑자기 쉬게 되면 괜히 이래도 되나 싶다가도 쉼에 적응이 되곤 한다. 그러다가 다시 해야 할 때는 괜히 하기가 싫다. 월요병이라는 말, 꽤나 과학적인 거 같다.


하기가 싫다는 마음의 표현보다는 변하는 중이라서 '어색하고 불안하다'라고 바꿔보면 어떨까? 거창한 시작을 하느라 무겁게 느끼고 있기보다는 '시작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도 좋고 말이다. 나머지는 어느 정도 관성에 몸을 맡기는 거다. 쉴 때도 그렇다. 이제 쉬어야지 한다고 바로 몸이 쉬는 상태가 될 수가 없다. 적응할 때까지 잘 기다려주는 게 좋은 듯하다. 적응했다면 '이제 쉬고 있구나'라고 잘 알아차려주기. 이건 내 나름의 컨디션 조절 방법이다. 어떤 속도로 삶을 보내고 있든 중요한 건 나에게 맞는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지 잘 알고, 그 사실을 수용하는 게 아닐까 싶다.


시간을 어떤 속도로 보내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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