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랫만에 고향을 찾아서 만난 이들
친구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친구가 북마산시장 골목 횟집에서 지인과 만나 술잔 나누는데 뒤편 손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낯익어 돌아보니 고3 담임선생님이더란다. 놀랍고 반가워 인사드리니 선생님도 그를 알아보더란다. 조만간 다시 뵙기를 청하고 헤어졌단다.
그래? 선생님 연세가 아주 많을 텐데? 아흔셋이라더군. 반갑고 대단한 일이다. 그저 다들 돌아가셨거니 하고 잊고 살았는데 술자리 하실 만큼 건강하다니. 일간 내가 마산에 갈 테니 겸사겸사 한번 뭉치자.
그로부터 2주 후에 반 친구들 다섯 명이 선생님을 모시기로 약속되었다. 장소는 선생님 단골이라는 그 횟집으로 정했다. 골목 어귀에서 기다리던 친구들이 몇 해만에 만나는 나를 반겨 주었다. 우르르 몰려가 선생님께 인사드리니 이름 하나 하나 외며 반기신다. 전해 듣기보다 훨씬 활기차시다. 평생을 교단에 서시며 담임도 숱하게 하였을 텐데 우리들을 알아보시니 대단하다. 늙다리가 된 친구들 얼굴과 비교하니 도리어 젊어 보이신다.
아들은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하고 사모님은 치매로 요양병원에 모셔두고 몇 해째 혼자서 지낸단다. 연금으로 풍족하니 친구들 지인들 만나 밥 사는 일이 일상이라니 참 다행이다. 당시에 같이 교단에 서신 선생님들 소식도 전해 들었다. 세상 떠난 분도 많고 더러는 병석에 계시어 만나지는 못한단다. 어쭙잖은 핑계를 대며 그 자리에 안 나온 몇몇 친구들의 안부를 물으시니 민망하다. 나쁜 녀석들.... 선생님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빕니다.
만남 2. 초등 동창
고향 곳에 왔으니 꼭 보고 싶은 이들 중 첫째는 초등학교 친구이다. 그 중 막역한 사이인 친구 둘에게 전화하니 사내끼리는 재미가 없으니 여학생 둘을 초대한단다. (다 늙은 영감, 할멈이지만 동창생끼리 모이면 편 가르는 호칭은 남학생 여학생이다.) 누구라도 만나고 싶다. 그렇게 다섯이 뭉쳐서 교외 맛집에서 장어구이로 점심 먹고 바닷가 찻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소나무 어깨 아래로 호수 같은 바다가 살랑거리는 정경이 아름답다. 단톡방에서 매일 노닥거리는 막역한 사이지만 퍼 나르는 글보다는 대면하여 떠드니 훨씬 정겹다. 어떤 친구의 민감한 소식을 듣기도하고 때론 누구를 같이 흉도 본다. 나중엔 각자 자식 자랑까지, 별별 이야기에 맞장구치고 까르륵거리며 시간가는 줄 모른다. 해 저무니 노래방으로 가잔다. 여기저기 전화해서 또 다른 친구들을 불러 모은다. 그 시각 아내는 내 친구 부인을 만나며 기다리고 있으니, 술에 노래에 잔뜩 취할 수는 없다. 아쉬움 남기고 먼저 빠져 나왔다.
만남 3. 친구 부인
친구가 떠난 지도 어언 10년. 중학교부터 십리가 넘는 길을 같이 걸어서 등하교한 죽마고우이다. 그는 마산 인근의 출신인데 학령을 제대로 안 지키고 입학하여 나이는 나보다 두 살 위이다. 첫 직장도 같은 회사에서 엇비슷한 업무를 하였고 결혼 후에도 부부가 절친이 되어 무시로 내왕하였다. 때로는 형처럼 감싸주고 내가 실직하였을 때 앞장서서 직장을 알아봐주었고 회사 경영에 어려운 일을 당하면 같이 머리를 싸매고 궁리를 보탠 친구이다.
어느 해 봄, 어깨가 축 처져서 내 사무실로 들어선다. 호진아, 내 먼저 가야 한다. 그게 뭔 말이고? 3개월밖에 못 산데... 몇 달 전에 몸이 축나고 소화가 안 되어 내시경검사를 하였는데 전혀 문제없다며 걱정하지 말라 하였다. 원기나 회복하려고 한방 치료를 해왔는데 도무지 회복이 안 되고 복통이 점점 심해졌단다. 예의 ㅅㅅ병원에서 이번엔 CT촬영을 했는데 결과가 췌장암이란다. 아내에게 알리기도 겁나 나한테 먼저 왔단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하였다.
그는 급하게 가게를 정리하고 부랴부랴 아들 둘 장가보내었다. 친구야, 난 참 행복하게 잘 살고 간다. 끼니도 걸러 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아파트에 온갖 살림 갖추고 자가용 타고 맛집 찾아다니지, 유럽 여행을 여러 차례 다녀왔지. 아들 둘 짝 맞춰 주었지, 할 것 다 해 보았으니 뭘 더 바라겠나. 다만 아내가, 아내가... 지극히 아내를 챙겨온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장사만 전념하던 아내 걱정이 많았다. 하루하루 커지는 통증을 견디며 부인에게 은행이며 주민 센터며 바깥일을 가르쳐주고 종교도 가지게 하였다. 그로부터 5개월, 홀연히 떠났다. 곁에 살 때에는 수시로 부인을 찾아가 위로하였고 이사 온 이후로도 가끔씩 안부를 묻곤 했다. 몇 년 만에 만난 아내에게 서러움 보따리 다 풀었으리라. 그녀도 이젠 생기가 들어 보인다.
만남 4. 아픈 친구
아이들 어릴 때부터 이웃으로 친구가 되어 40년을 친하게 지내는 이를 찾았다. 그는 나보다 한 살 위로 술친구가 되었고 부인은 아내와 한 달 차이라 흉허물 없이 지낸다. 아내가 손자 육아로 창원에서 서울로 KTX 출퇴근할 즈음 그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달려가 중환자실을 찾았다. 뇌경색으로 혼수상태다. 아무래도 회복이 어렵습니다. 깨어나 앉을 수만 있어도 기적입니다. 의사의 말에 얼마 전 친구를 보낸지라 덜컥 겁이 났다.
일주일 후에 다행히 의식은 돌아왔지만, 더 치료할 일이 없다며 퇴원당하여 요양재활병원으로 전원하였다. 종일 병원에 붙어 앉아 간병하는 그의 아내는 지극정성이었다. 주무르고 씻기고 먹이고. 우리도 매주 한 번씩 아내가 서울서 올 때마다 문병하러 다녔다.
기적이 일어났다. 한 달쯤에 어눌하게 말하더니 제법 사람도 알아본다. 드디어는 일어나 앉게 되고 휠체어를 타고 복도 산책도 가능하게 되었다. 석 달 후에는 지팡이에 의지하여 조금씩 걷고 재활 치료도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상태가 끝. 5년이 지났지만 더 이상 호전은 없다. 몸의 절반은 쓸 수가 없으며 인지능력은 80% 정도만 회복되었다. TV뉴스도 그림만 보고 계산도 못한다. 그러나 살아난 것만으로도 모두에게 고마움과 희망을 선물하였다.
아파트에 들어서니 반가워하며 농으로 거수경례를 한다. 그는 내 아내를 더 반기어 이름도 기억한다. 술상을 내오라고 채근이다. “김형도 한잔 할라요?” “아입니더. 난 못 묵십니더.” 셋이서 자식들 이야기며 손주 이야기가 끝이 없는데 그도 옆에서 연신 싱글벙글 이다. 뭘 알아듣기나 하는지. 그래도 악수하는 손에 힘은 주어진다.
만남 5. 홀로된 사돈
안사돈은 아이들 결혼 1년이 안 되어 담낭암으로 떠났다. 결혼 전에 이미 발병을 알고, 서둘러 결혼시켰었다. 상견례를 병실에서 하였는데 아내 손을 붙잡고 며느리를 부탁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혼자되고 유달리 눈물이 많아진 바깥사돈은 우리가 창원을 떠나 이사 올 때에도 돌아서서 눈물 훔치었었다.
애잔한 모습이 안타까워 창원에 가게 되면 꼭 만나서 위로하는 사이가 되었다. 다행히 운동을 좋아하여 동네 배드민턴 동호회 회장도 10년째이며 요즘은 파크골프클럽장도 맡았단다. 사업도 왕성하고 사회성이 좋아 잘 지내는 듯하지만, 평생을 살던 주택 여기저기에 사람의, 아내의 흔적이 아른거려 해떨어지면 집에 들기 싫단다. 혼자 밤길을 걸어도 보고 뛰어도 본다는 소리에 애잔하다. 사돈을 만나는 게 더 할 수없이 편하고 위안이 된단다. 술은 나하고 마시며 이야기는 줄곧 아내와 한다. 여자 친구라도 구해보라니까 소개로 만나보면 금전적 조건을 앞세워 정이 가지 않더란다. 드라마처럼 멋진 로맨스는 없다.
술잔이 거듭되면서 이구동성으로 손자 자랑에 서로 추어주며 웃음꽃 핀다. 훗날 사돈 사업 마무리하면 이사와 곁에서 살자 했지만, 고향 떠날 이가 아니다. 헤어지려니 많이도 아쉬워한다.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집까지 걸어가며 딸과 손자와 통화하겠지. 그러며 한곡 뽑겠지. 사돈 노래는 초등1학년 손자 녀석도 곧잘 따라 부른다. “가야 해~ 가야 해~ 나는 가야 해~ 순이 찾아 가야 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