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금 유머 인문학 09.
요즘엔 우스갯소리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나는 놈 위에 타는 놈, 더 위로 노는 놈, 운 좋은 놈이 줄줄이 있다고들 말한다.
그저 열심히 일하거나 혹은 고만고만한 실력만으론 경쟁에서 살아남기가 힘겹다는 얘기다.
비록 윗줄의 노는 놈이나 운 좋은 놈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뛰는 놈 보다야 우아하게 날아다니고 싶은 건 당연한 소망일 것이다.
산 아래 깊은 숲속에서 길을 찾느라 뛰어다니기보다는 산 위를 날면서 산세를 보고 지름길을 찾는 게 훨씬 수월하듯이 말이다.
성공학이라 불리는 경영학에서는 나는 놈의 특성을 ‘전략적 사고’에서 찾는다.
기존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문제의 원인을 파고들며, 넓고 장기적으로 바라보기가 그 핵심인데… 좋은 말씀들이 그렇듯이 알듯 말듯 하다.
모두가 날개를 꿈꾸지만 발바닥에 땀 차는 현실을 보면 확실히 이 전략적 사고란 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선천적, 후천적 장벽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선천적 장벽은 뭐든 ‘일단 뛰고 보는 인간의 본성’이다.
로버트 그린은 “사람들은 생각하기보다는 반응한다."라고 지적한다.
즉 인간은 눈앞의 일에 매달려 즉각적인 자극을 추구하는 근시안적 본성을 타고났기 때문에 생각하는 노력을 꺼려 한다.
후천적 장벽은 ‘나잇살’이다.
나이가 들면서 쌓인 경험과 지식이 주는 우월감은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일 동기를 줄여 마음을 닫게 만든다. 결국 생각 패턴이 경직화되는 것이다.
세계적 경영 석학인 마이클 포터는 전략적 사고를 이렇게 설명한다.
“거북이가 토끼랑 경주해서 이기려면 달리기 대신 수영을 하자고 해야 한다.”
무턱대고 열심히만 해서는 안되고,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자면 남을 이기기 전에 나를 먼저 이겨내는 게 우선이다.
전략적 사고, 날기 위한 이륙은 본성과 습관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것부터 시작인 셈이다.
꼬마 윌리는 무엇이든 내기를 거는 버릇이 있는 문제아였다.
이를 몹시 걱정하던 윌리의 아버지는 담임선생에게 상담을 하러 갔다.
둘은 윌리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윌리가 손해를 보게 될 함정을 파놓기로 하였다.
다음날 윌리는 담임 선생의 지시로 방과 후 빈 교실에서 남아있었다.
담임 선생이 전날 모의된 계획에 따라 막 얘기를 시작하려 할 때 윌리가 소리쳤다.
“말씀 안 해도 저는 무슨 말을 하시려는지 알아요. 선생님은 거짓말쟁이에요!.
난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해도 안 믿어요!”
담임선생이 영문을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윌리가 다시 말을 이었다.
“선생님 머리 색깔은 블론드이지만 배꼽 밑 거기 색깔은 까만색이지요?
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다고요"
윌리의 담임선생은 냉정을 유지하려고 애쓰며 “윌리 아냐.”
“내기할까요? 1달러 걸겠어요.”
담임 선생은 윌리의 버릇을 고칠 기회가 쉽게 왔음을 내심 기뻐하며, 5달러로 금액을 높이자고 제의하였다.
그리곤 치마를 걷고 팬티를 내린 후 그곳의 색깔을 확인시켜주었다.
윌리는 5달러를 내고 아무 말 없이 나갔다.
담임선생은 즉시 윌리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방금 전 있었던 일을 자세히 얘기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어때요? 윌리에겐 큰 교훈이 되었겠죠?“
그러자 윌리 아버지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맙소사! 윌리 녀석은 아침에 오늘 선생님의 거기를 볼 수 있다고 해서 저와 10달러를 걸고 학교에 갔었다고요!"
말 나온 김에 한마디 더 하자면,
내기의 끝판왕은 결투다.
불과 100여 년 전까지 이어져온 결투는 가장 문명적이면서도 가장 야만적인 내기였다.
명예, 용기, 정의 같은 대의명분을 위해 귀족, 언론인, 문인, 예술가 등 식자층에서 성행한 문명적인 승부이면서도,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야만적인 승부였다.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은 대표적인 결투 애호가였다.
결투를 소재로 소설을 쓰고, 20번이 넘는 결투 신청도 주고받더니, 결국엔 37세에 결투로 사망한다.
학생 괴테는 연인 때문에 결투를 벌이다 부상을 입은 적이 있으며, 철혈재상으로 불리는 독일의 비스마르크는 학생 시절에 25번이나 결투를 했다.
이 밖에 마르크스, 슈만, 링컨 등도 결투와 연루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렇듯 결투에는 기사도 정신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미지가 야만성을 덮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 속 사정을 보면 꽤나 비루한 모습이 드러나곤 한다.
예컨대 식당에서 식사 매너가 없다고, 춤을 추다 부딪쳤다고, 건방지게 쳐다본다고, 말하는 중에 방을 나갔다고, 같은 음식을 시켰다고… 등등 사소한 이유에 목숨을 건다.
신사도를 논하기 민망하게, 남녀가 직접 결투를 벌이거나, 개 주인을 살해한 자와 개와의 결투가 벌어지기도 했단다. 대신 남자는 허리까지 땅에 파묻힌 체로 모양 빠지게 말이다.
또 결투용 권총의 시원찮은 성능으로, 치명적 총상보다는 옷 조각이 몸에 들어가 곪는 감염병으로 죽는 경우가 많아서 속옷만 입고 결투에 나서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한 신사들의 근사한 결투도 그 끝은 수컷의 몽매함만 남을 뿐이다.
푸시킨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에는 홧김에 정해진 결투를 후회하고, 주위의 조롱이 무서워 취소도 못하고, 밤새 죽음의 두려움에 뒤척이는 모습 등이 가련하게 그려진다.
결투 뒤에 남은 여인은 얼마 못가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버리고, 결국 승자의 죄책감과 패자의 허무함만 남은 어리석은 수컷들의 해프닝으로 끝난다.
오늘날 결투는 그 야만성은 버리고 공정한 경쟁의 규칙, 스포츠로 옮겨졌다.
하지만 우리 일상에서는 아직도 홧김에 목소리를 높이고, 고집을 피우고, 올인을 외치는 남자들의 결투 본능이 꿈틀댄다.
하지만 일상은 경기장과 달리 경쟁의 규칙이 공정하지 않으며, 어디든 나는 놈들이 도사린다.
무턱대고 반응하기보다는 생각해야 한다! ‘전략적 사고’
베르디의 오페라 중 역대급 복수극인 ‘일 트로바토레’에는 결투 장면이 1막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여주인공 ‘레오노라’를 두고 두 장군이 결투를 벌이는데, 질투, 분노, 애원의 감정을 쏟아내는 3중창이 인상적이다. 내친김에 유튜브 정주행을 해보니, 새삼 고전의 품격을 재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