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다음에 보자’를 자주 말할까: 미루기의 철학
친구와 헤어지면서 “다음에 보자!“라고 가볍게 말한 적이 있는가? 그런데 정작 그 ‘다음’은 오지 않고, 우리는 서로의 연락처에 먼지만 쌓아가며 시간을 흘려보낸다. 왜 우리는 쉽게 만남을 미루고, 다음을 기약할까? 이 습관 속에는 관계, 시간, 그리고 인간의 불안정한 마음이 숨어 있다.
1. 미루기는 심리적 방어기제다
“다음에 보자”는 말은 관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어기제일 수 있다. 지금 만남을 구체화하면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긴다. 그래서 우리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보다, 막연한 미래에 미뤄 두는 것이 편하다고 느낀다. “다음에”라는 말은 관계를 끊지 않으면서도 당장의 부담을 피할 수 있는 심리적 타협이다.
2. 미래는 끝없는 가능성의 공간이다
사르트르는 “미래는 인간이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안에 무한한 가능성을 투영한다. “다음에 보자”는 말은 지금의 불편함을 잠시 미루면서도 관계의 가능성을 남겨두는 말이다. 그 순간 우리는 언제든 상황이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다.
3.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시간의 유한함을 강조했다. 우리는 종종 시간을 무한한 자원처럼 느끼며 “다음에”를 반복하지만, 그 반복은 결국 끝을 향해 가는 시간 위에 놓여 있다. 다시 만나지 못한 채 멀어지는 관계들, 놓친 기회들은 우리의 유한한 시간을 일깨운다.
4. 미루기와 관계의 모순
“다음에 보자”라는 말은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의지를 담고 있지만, 사실 지금 만나지 않으면 그 관계는 서서히 희미해진다. 만남은 미루면 미룰수록 성사되기 어려워지고, 어느새 우리는 “언젠가 보자”라고 말하던 사람들과 완전히 멀어지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관계를 이어가려는 우리의 말이 결국 관계의 단절을 만들어 낼 수도 있는 것이다.
5. 결론: ‘지금’의 의미를 찾는 법
중요한 것은 ‘다음’이 아니라 지금의 순간이다. 미래를 기약하는 말 대신, 지금 바로 연락을 하고 만남을 실천하는 것이 관계를 지속하는 비결이다. 만남은 완벽한 타이밍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다.
다음번에 “다음에 보자”라는 말이 떠오를 때 이렇게 생각해보자:
“지금이 아니면 정말로 다음이 있을까?”
“완벽한 순간은 오지 않는다. 중요한 건 바로 이 순간이다.”
그래서 오늘, 오랫동안 미뤄온 그 친구에게 이렇게 말해보자:
“다음이 아니라, 우리 지금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