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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사람 가탁이 May 28. 2023

내가 받은 훈장

#3 올레길 20코스, 230527, 비 흩날림

- 물집을 꼬득하게 말려 없애는 방법(지극히 민간요법)
바늘에 실을 꿴 다음 물집 양쪽을 통과해 실 양쪽 꽁무니를 조금 남기고 자른다. 발아래 수건 등을 받쳐두면 물집 속의 물이 실을 타고 조금씩 빠져나간다.  다음 날 아침에 보니 꽤 꾸덕해져 있다.

전날은 거북이반(조금 짧은 거리를 걷는다)으로 출발해서 토끼반으로 마무리했다. 일행 중 한 분이 잘라서 붙여주기까지 한 완충테이프(아! 절실하게 이름을 알아내고 싶다) 부적이 상당히 신뢰가 갔기 때문이다.

코스마지막 김녕바닷가에 발을 담근 효과인지 일행이 알려준 민간요법 덕인지 자고 일어나니 물집이 거의 득해져 있었다. 습윤밴드를 감고 발가락양말과 등산양말을 겹으로 신고 오늘은 자신 있게 토끼반으로 출발!



어제 찾은 김녕해수욕장의 색깔이 밤새 바뀌어 있었다. 날씨가 흐린 탓인지 명도와 채도가 조금 낮아진 느낌이었다. 이 바다 저 바다 군데군데 많이 봤지만 제주바다는 가히 최고라고 할 만큼 바다 빛깔이 고왔다. 오늘은 거의 바다를 끼고 걷는 길이라고 가이드가 상세히 알려주었다.

월정해수욕장가면서 낮은 돌담길 사이로 걸으며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궁금해졌다. 어? 제주도는 돌담이 낮네? 여기는 도둑이 없나?

그랬다. 검색해 보니 제주에 없는 것 중 하나가 도둑과 정낭(대문) 그리고 거지였다. 거지가 없다는 건 굶을 일이 없을 만큼 먹고살 길은 있다는 것이고, 그렇다 보니 도둑도 없다는? 혼자 상상을 하며 걷다가 또 길을 잃었다.


아! 가이드가 알려준 정보 하나, 제주도 올레길은 왼쪽에 바다를 두고 걸으면 길을 잃지 않는다고 했다.


제주 밭담 안에는 씨마늘이 줄지어 누워있었다. 당연히 씨마늘이라고 생각했다. 마늘 옆에 나란히 누워있기도 했고 모양은 조금 달랐지만 분명 마늘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늘이 아니었다. 자라서 파가 되는 파종자였다.

세화해수욕장으로 들어가기 전 지나가는 길에 마늘줄기를 자르고 있는 농부에게 여쭤보고 알게 되었다. 또,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다. 농사를 지어보지 않았으니 이 나이 먹도록 마늘과 파의 종자를 구별하지 못했던 것이다. 같이 걷는 무리 중 누군가가 그랬다.

"저도 마늘인 줄, 궁금했는데 물어보지도 못하고... 이제부터 궁금한 건 물어봐야겠네요"


최종코스인 세화해수욕장 도착하기 전부터 새끼발가락 쪽이 조금씩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또 물집이? 이젠 물집이 두렵지 않다. 믿을만한 민간요법이 있고, 맺힌 물집이 마치 숨비소리처럼 내가 살아있음을 드러내는 훈장인 것만 같아 자꾸자꾸 웃음이 나올 뿐.


김. 월. 세. 바닷길을 걸으며 몸에 받은 훈장을 보니 뜬금없는 궁금증이 생겨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부처님은 일 년에 한 번이 아닌,

여러 번 오시면 안 되는 것일까?

여러 번 오시면 어떤 일이 생길까?

어제와 색깔이 바뀐 김녕바다, 예쁘다
놀멍 쉬멍 걸어가는 돌담에 핀 줄장미, 너도 예쁘다.
월정리 바닷가 여기 빨간의자에서 행동식을 먹었다는건 비밀아님^^
조금씩 빗방울이 흩날리는 월정리 바닷가
수수께끼 같은 제주방언!


#올레 20코스 #월정해수욕장 #세화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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