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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사람 가탁이 May 29. 2023

올레길 속 올레길, 추자도

#4 올레길 18-1, 230528, 바람이 세다,

어쩌면, 새끼발가락의 발톱이 빠져버릴지도 모르겠다. 그건 지나간 것, 특히 아프고 힘든 기억은 어버리라는 내 몸의 독촉일지도 모르겠다.


올레길 속 올레길 추자도에 왔다. 얼마 만에 먹어보는 멀미약인지, 멀미약이 반가운 것은 처음인듯했다. 제주항에서 1시간 정도 배를 타고 들어와 민박집 차에 짐을 두고, 귀여운 타일그림으로 채워진 마을 담벼락을 지나 상추자도를 오르기 시작했다. 우려했던 비는 오지 않고 안개만 바람을 타고 휘잉 휘잉 소리 내며 내 뒤를 따라 산을 올랐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었음에도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고 다리도 조금씩 휘청거렸다. 전날 쉽게 잠들지 못하고 뒤척인 탓이렸다. 세화바다의 물빛을 눈앞에 두고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에, 창 넓은 아니 창이 바다로 열린 카페에서 조금 늦은 오후 시간임에도 커피를 마신 게 잠을 몰아낸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조금 빠른 거북이가 되어 지나간 길을 되돌아 걷다가 길가 정자에서 누군가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보니, 캠프 일행인 듯하였으나 확인이 되지 않았다.


걸음을 멈추고 오롯이 눈과 귀에만 모든 감각을 집중시켜 보았다. 보이지 않던 그들의 윤곽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고, 자세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노랗게 피어 바닷바람에 몸을 실은 이름 모를 꽃과 정자 위에 드러누운 몇몇 일행들이 보였다. 슬그머니 옆으로 가서 꽉 조였던 신발끈을 풀고 배낭을 베개 삼아 벌렁 누워버렸다.

그래, 때론 이렇게 편한 호흡으로 느슨해져도 좋으리라.

때론 쫓아가지 않아서 편안해져도 좋으리라.

바닷바람이 온몸을 쓸어주며 토닥여 주었다.

그래, 잘하고 있는 거야, 잘 살아가고 있는 거야.


기가 막힌 저녁을 먹었다. 며칠 되지 않은 호텔뷔페가 식상하게 느껴졌는데 석쇠에 구워 슴슴하고 탱글한 굴비와(조기였나? 이런, 나 주부가 맞나?) 갈치속젓, 파김치, 총각무김치, 김치... 무엇보다 엉겅퀴가 시래깃국의 모습으로 나왔는데 맛이 기가 막혔다. 몸에 좋은 엉겅퀴를 된장과  버무려 국으로 끓여낸 국을 일행 모두 감탄하며 먹었다. 심지어 밥을 두 그릇씩 먹는 이들도 있었다. 저녁을 먹고 무거워진 몸과, 가벼운 복장으로 야간 트레킹을 갔다. 트레킹이란 말에 흠칫했으나 낙조를 보기 위한 힐링타임이었다. 흐린 날씨 탓에 큰 기대하지 않았음에도 섬에서 보는 낙조는 장관이었다. 비가 예고된 내일이 더 기대되는 이유였다.


조금씩 경사진 봉래산을 오르다 뒤돌아봤더니...
벌렁 누워버린 정자아래 바다
낙조의 서막이 열리고...
돌아오는 길도 멋지다.

#올레 #추자도 #추자도 낙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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