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의 마지막 나이라는 그녀는, 6년 전 갑작스러운 육종암 진단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고 했다. 그저 살아서 지금 이렇게 걷고 있는 게 감사하고 일상이 기적이라고 한 그녀는 교직생활을 은퇴하는 해에 암 중에서도 성격이 고약한, 더군다나 수술도 힘든 부위에 자리한 육종암을 진단받았다고 했다.담당의사도 그녀와 진료한 후 늘 그녀의 수술과 치료에 마음이 갔다고 했고, 그런 그녀가친척들에게까지 수술 사실과 수술 이후 예상되는 몸의 변화를 알리고 수술과 항암 방사치료를 무사히끝내고 살아남았다고,
결코 무사하지 않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의료보험공단과 생명보험회사에서 줄기차게 주장하는 암의 직접적인 치료라는 게 암도, 사람도 철저하게 무너지고 죽게 만든다는 걸 나는 안다. 항암 치료시마다 물 한 방울조차도 넘기지 못하는 고통은 죽고 살고를 반복할 만큼 고통스럽고 고통스럽다. 암의 직접치료 방법은 어찌 보면,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이다.
살아줘서, 치료 잘 견디고 살아서걸어주어서 고맙다고 담당의사가 90도로 인사를 했다고도 얘기했다. 의사에게도 그녀는 기적이었던 것이다.
얘기를 하는 그녀도 얘기를 듣는 나도 걷고 또 걸었다.
그녀도 나도 눈과 목소리에 눈물이 가득했음은 물론이다.
오늘이 가이드로 만나는 마지막 날이라고, 다른 모습으로 다른 장소에서 만날 수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만난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볼 때마다 씩씩하고 명랑한(사람을 상대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녀가 내 눈에는 예쁘기만 했다. 그날그날 일정과 코스안내부터 유의사항 등을 선생님이라는 호칭과 함께 알려주던 그녀는, 덩치는 좀 있지만 조금 귀엽고 애교가 많았다. 10여 년을 제과제빵과 함께했다는 그녀가 고향인 영월을 떠나 제주에서 생활하는 이유는 궁금하지 않았다. 실물보다 더 멋지고 선명하게 사진을 잘 찍어주는 그녀를 볼 때마다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 그녀가 오늘까지만 가이드로 산다고 말했다. 걷는 게 좋다며 그녀는 웃었지만 그 웃음뒤에 숨겨진 외로움과 헛헛함이 느껴져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늘 앞에서 걷던 그녀가 오늘은 맨 뒤에 남겨진 이들과 함께 걷고 떠들고 웃으며, 거절만 하던 음료와 준치까지 먹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