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빗소리를 친구 삼아잠이 들었는데 새벽까지 빗소리가 창문에 가득 매달려 있었는지습기로 온 창문이 흐려져 있었다.
장외 걷기로 정식 올레코스가 아닌 삼다수숲길을 걸었다. 오롯이 삼다수숲길만 걸었음에도 지루하지 않을 만큼 함빡 비가 내린 다음 날의 숲길은 청량함 자체였다. 걷는 동안 가슴과 코를 활짝 열어 산소를 마시고, 눈을 크게 열어 숲을, 숲의 초록을, 초록 위에 얹힌 투명함을, 숲의 어우러짐을 들이마셨다.
자꾸만 영역을 넓혀가는 조릿대가 제주 숲의 고민이라고 얘기 들었지만 삼나무아래 나지막이 군락을 이룬 조릿대도 나름 장관이었다. 전날 내린 비로 흙으로만 된 길은 질퍽거려 여행자들을 불편하게 했지만 삼나무들이 뿜어내는 초록 속살거림과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이 들려주는 오케스트라는 불편함을 충분히 감내하고, 감동받게 만들었다.
숲의 싱그러움에 취하고 곳곳에 걸린 나무안내판의 문구대로 흉내를 내며(나 따라 해봅서) 걷다 보니 어느새 앞을 보아도 뒤를 돌아보아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오싹해지기도 했지만 재잘거리는, 아니 경계하는듯한 새들과 일방적인 대화(알았어 나는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일 뿐이니까 흥분하지 말고 워워)를 하기도 하고,
출발 전 가이드의 당부(갈림길에서는 오른쪽 길을 택하면 원하는 길을 걷는다)와, 내일부터 아마추어 길잡이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일행 중 한 사람의 어설픈 이끌림으로 최장코스인 3코스를 걸을 수 있었다.
붉은 화신송이 자갈돌이 깔린 길을 걸으며 내 걸음으로 화산송이를 통과한 빗물이 맑게 더 맑게 걸러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발바닥에 좀 더 힘이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