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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사람 가탁이 May 30. 2023

곰탕에 빠진 '추자'

#5 올레길 18-2 하추자도 230529 안개 가득

대가리 드시소

아침식사를 하러  간 식당에서 익숙한 경상도사투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놀라는 소리에 한바탕 웃음잔치가 벌어졌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울산아지매가 매운탕을 떠주며 나름 정겹게 말한 것이었다.  우럭매운탕을 먹어서인지 한바탕 웃어서인지 온몸이 따듯해진 상태로 출발했다. 아주 작은 일상의 장면으로도 온통 행복한 감정으로 가득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전날이 맑은 곰탕이었다면 오늘은 진한 곰탕이다, 곰탕 같은 날씨다. 뿌연 안갯속에 모조리 담겨버렸다. 행여 미끄러질까 한 발 한 발 천천히 걷다 보니 곰탕에서 나무도 건져내고 바다도 건져낼 수 있었지만 끝내 코끼리(코끼리를 닮은 바위)는 건지기 어려웠다.

이 집(추자도) 곰탕(안개 자욱한 날씨를 일컫는) 맛이 제대로구만!

안갯속을 헤집으며 뚜벅뚜벅 걷는 것도 나름 운치 있었다. 길가에서 자란 산딸기와 탐스럽게 달린 오디, 육지에서 보기 힘들다는 금은화(인동초라고도 한다)도 제주도오름과 올레길에는 지천으로 피어있었다. 귀한 몸 뵙기 전 몇 미터 전쯤이면 은은하고 기분 좋은 향기가 먼저 맞아준다. 첫 코스를 걷는 도중에 올레길가에서 금은화 꽃잎을 조심스레 따고 있는 젊은 어르신을 뵈었다. 눈으로만 보실 요량은 아닌듯하여 꽃잎 체취의 목적(엄마야! 이리 거창한 단어를 쓸 일인가)을 여쭤보았다.

요 꽃잎이 약입니다. 호흡기에 좋다 해서요

크지 않은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호흡기에 좋다니, 바로 정보검색에 빠졌음은 물론이다.


나바론을 걷고 내려오는 길 끝에 있는 몽돌 바닷가에 지친 발을 담가보았다. 날씨는 습기가 가득했지만 마음은 햇볕이 쨍쨍했다. 이런 게 살아가는 느낌이구나.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못난 발을 구석구석 씻어주는 느낌은 세상 어떤 의사보다 실력이 뛰어났다. 발을 닦느라 앉아있는 사이 가까운 바다 위를 첨벙 대는 물고기를 보았다. 조금 큰 첨벙거림에, 고래인가 하고 이러다가  '바다로 간 가탁이' 다큐 찍는 거 아닌가 하며 혼자 기쁜 마음 달랠 길 없어 펄쩍거렸다.

제주항으로 가는 배 시간이 많이 남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선원들의 숙소로 이름 지어진 건물에 문이 열려있는 걸 보고 입구에서 서성거리다 그물 작업 중인(추자도는 굴비가 유명하단다) 아주머니 몇 분의 얘기에 끼어들었다.

이거 먹어보세요 개떡이라, 쑥개떡!

떡 하나를 쓱 내밀어주셨다. 쫀득하고 담백한 게, 입으로 녹아들어 가는 듯 맛있었다. 바로 앞 카페를 운영한다는(그물작업 도와주시다가 손님이 오시면 가게로 한걸음에 달려가셨다) 사장님께 카페 디저트 메뉴로도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괜찮은 아이디어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셨다. 

어디서나 펄떡대는 오지라퍼, 그건 바로 나야 나!

요게 약이 된다는 금은화라지!
아련하게 보이는 파도여!
습기 가득한 산길은 초록투성이
꼬끼리야 너무 부끄럼타는거 아니니?
말머리는 부끄러움이 덜했다.

#금은화 #추자도 #나바론하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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