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발이 제 모습을 찾아가는가 싶었는데 이번에는 전신이다. 감기가 오려는지 목도 꺼슬거리고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아프다. 전날 구입해 둔 감기약을 먹고 버스에 올랐다.
9코스는 거리는 11.8km인데도 난이도는 '상'으로 분류되어 있다. 군산오름을 오르는 초반은 한참 동안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해서 힘들 거라는 가이드의 안내가 있었다.
살짝 고민스럽긴 했지만 오늘 하루가 끝이 아니므로 오늘은 조금 거리가 짧은(초반 오르막 3km 정도를 건너뛰는) 거북이반에 합류하기로 했다.
군산오름(굴메오름)을오르기 시작할 때(오름의 허리 어디쯤) 조금 흐리던 날씨는 전망대에서 여러 장의 인물사진을 찍으며 머무르는 동안에도 맑아지지 않았다. 조금아쉬웠던 건 맑은 날이면 제주도 이곳저곳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었음에도 안개 때문에 선명하게 볼 수 없었다는 것,조금 더 아쉬웠던 건 몇 걸음만 더 갔더라면 정상에 오를 수 있었을 텐데 거북이반은 알려주는 이가 없었다(정식 가이드의 부재가 아쉬운 부분이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아쉬움을 덜어준 건 조금 천천히 가는 걸음이지만 함께 걷는 이들이 있었다는 것!
물이 맑고 경치가 뛰어나다고, 계곡에 꼭 발을 담가보시라고, 발을 담근 채 행동식을 드시면 꿀맛이 따로 없다고 그러니 꼭 가보시라고 전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그녀(#19편 참고)가 추천해 준안덕계곡을,올레안내리본을 따라 걸었지만 중간중간 출입이 통제되고 있어서인지계곡으로 가는 길은 찾지 못했고 제대로 된경치도 볼 수 없었다. (거북이반의 눈에 보인 계곡물은 깨끗함과는 거리가 멀고도 멀었건만, 토끼반 일행들은 시원한 계곡물에 발도 담그고 행동식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고 했다) 대신 한국남부발전소 옆 공원에서, 다양한 야생화와 꽃과 단짝인듯한 풍뎅이를 만나게 되어 넓지 않은 공원을 천천히 둘러볼 수 있었다.
온전한 컨디션이 아님에도 8km 정도를 걸은 스스로를 칭찬해 주기 위해 숙소 근처에 찾아둔 커피맛집을 찾았다.
평일 오후시간이어서인지 조용했다. 단골고객들이 원두를 사기 위해 들르는 시간 외에는, 좋은 향기로 몸을 달래며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다. 사람이야기사람이 사는 이야기, 제주도에 잠시 왔다가 정착한 지 17년째라 했다. 커피맛만큼 사는 맛이 좋아 보이는 그녀의 얼굴은 편안함 그 자체였다. 그런 그녀가 내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