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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사람 가탁이 Jun 18. 2023

빚을 갚으러, 가파도

# 21,22 올레길 10, 10-1 코스 230615

#21,

몸살 기운이 그대로 몸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밤새 뜬 눈으로 새벽을 맞았지만 몸이 일어날 준비를 하지 않았다.

뼈 하나하나가 좀 쉬어가라고 공격을 퍼부었다. 가만히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신호를 보내며 힌트를 주는 것이리라 조금 쉬어가도 괜찮다고.

몸이 표현해 내는 언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일행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눈으로 걷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성격이 괄괄해 보이던 조방장(캠프 가이드 역할을 하며 비용을 주지 않는)이 숙소로 온열매트를 들여보내 주었다.

그녀의 얼굴을 쓰윽 쳐다보는데, 20일 동안 걸으며 느꼈던 그녀에게 또 다른 면이 있음이 놀라웠다.

역시 사람은 겪어봐야 제대로 알 수 있나 보다.

제주에는 아픈 역사가 곳곳에 있었다.
죄없이 죽어간 그들의 억울함을 위로하고 또 위로하고

#22,

전날 제대로 쉬었다고 생각했는데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았다. 계속 쳐져있으면 몸 보다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아 10-1 코스인 가파도를 가보기로 했다. 며칠 동안 몸과 마음에게 진 빚을 갚아주기 위해.

섬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아 조금 바쁘게 움직였다. 물질하는 해녀들의 호흡이 어느 정도인지 측정해 볼 수 있는 엉뚱함도 허용되지 않을 만큼.

들어오는 배 시간에 따라 나가야 하는 배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게(약 2시간 정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정해져 있는 거라면 따를 수밖에...

4.2km밖에 되지 않는 거리가 아쉬웠는지 급하게 일정이 변경되었다며 금오름 오르기가 추가되었다고 했다.


시멘트길로 오르고 숲길로 내려오는 일반코스는 재미없을 것 같다며 일행 중 몇 명은 숲길로 올라 시멘트길로 내려오는 변칙(?) 코스를 선택했다. 


역시 가끔은, 정해지지 않은 길을 가보는 것이 더 신날 수도 있다. 길 어디쯤, 어떤 모양의 돌멩이나 웅덩이가 있을지 모르니까, 포장이 잘 된 길만 걷는다면 몸의 근육도 제 할 일을 잊어버리고 살 깊숙이 숨어버릴지도 모르니까,


인생마찬가지 아닐까...

골짜기가 깊고 높을수록 더 단단해지고 유연해지리라,

굴곡을 경험할수록 무릎이 꺾일지라도 또 추스르고 일어나 더 단단해진 유연함으로 살아있을 테니...


오름 정상에는 분화구와 분화구 안에 연못이 있었고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일행들도 있었다.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아이가 준비를 하고 있길래 지나가며 파이팅을 외쳐주었더니 머쓱한지 머리만 긁적거렸다. 설마 뛰어내리기 싫어서 뭉그적거리고 있는 모습을 들킨 게 민망했던 것이었을까... 아니다. 고개를 흔들었다.


이젠 정말,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만 믿을 뿐이다.


또 다짐해 본다.

#가파도 #금오름 #사람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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