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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사람 가탁이 Jun 19. 2023

길동무가 돼버린 코로나

#23 올레길 11코스 230616 점점 뜨거워지는

결국 그랬구나, 이유가 있었구나 그럼 그렇지.

몇 년을 함께 해 온몸인데 이유도 없이, 이유도 모르고 막 아프고 그럴 리가 없지. 몇 년 전 이유도 모르는 대왕펀치를 제대로 맛보고 나서는 '내 몸 사용보고서'를 제출하듯, 결과를 보면 원인이 보이거나 추측이 되긴 했었다. 이번에도 '발단'이 추측되기는 하였으나 단정 지을 수가 없어서 혼자 아프고 말았다.


며칠 동안 열이 떨어지지 않고 입이 말랐다. 목도 불편하고 무엇보다 전신을 타격하는 통증 때문에 잠을 설쳤다.


전날 오후, 엄청난 열 때문인지 머리가 너무 아파 캠프로 복귀하지 않고 숙소 근처 병원을 찾았고 증상을 물어보는 젊은 의사에게 느낄 수 있는 증상은 모조리 얘기했다.

열나고 머리 아프고 뼈도 아프고 안 아픈데 없고 콧물은 흐르려다 말고 기침은 한 번 하면 계속 나오고 가래 때문에 목구멍이 간질거리고요

제대로 소리를 내지 못하는 목으로 겨우, 하지만 간절하게 호소했다. 일련의 증상을 들은 의사가 말했다.

요즘 독감과 코로나가 기승을 부린다고,

독감 검사 해 봐 드릴까요?

당연히 둘 다 하는 줄 알았는데 독감 검사만 한단다.

뭐가 되든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진통제라도, 아니 수액도 같이 주사해 달라고 했더니 안색이 밝아지며 안내해 주었다. 집에 가서 코로나 검사는 꼭 해보시라고, 왜 굳이 집에 가서 해야 하는 건지 묻고 싶었지만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말았다.

수액과 해열제와 진통제를 맞는 동안 잠은 커녕 오한이 들었고 응급벨로 간호사를 불렀다. 이미 독감은 음성판정을 받았으나 감기라고 하기에는 온몸이 펄펄 끓고 있었기에 코로나 검사를 요청했고, 불안한 예감은 벗어나지 않고 수액이 다 들어가기 무섭게 진료받았던 의사에게 앉혀진 채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아버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코로나에게 발목을 잡혀버렸다.

'안 되는데, 지금 아프면 안 되는데, 여기서 아프면 큰일 나는데 코로나이면 더 큰일인데' 머리가 빙글거렸다. 그 순간, 나보다 며칠 전부터 증상이 있한 달 동거인에게 더 적극적으로 검사 요청을 했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병원에서 지정(왜 굳이?)해주는 약국을 갔다. 처방전을 내미는데 젊은 약사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마스크를 하고 오셨어야죠!!!

아이쿠 미안합니다 제가 처음이라 잘 몰라서...

당연한걸 왜 모르시죠?

어라? 컨디션도 엉망이고, 심증은 확실하나 물증이 불확실한 감염경로 때문에 머리도 마음도 불안하고 불편한데 멀쩡하게 생겨 말도 멀쩡하게 할 것 같던 약사는 전혀 멀쩡하지 않게 발끈하며 마스크를 주더니(후불 계산이었다) 나가서 착용하고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격리가 의무는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걷지는 말라고 했다. 특히 올레길 걷기는 무리라고 했다 피곤하면 더 악화될 거라고.

방구석에 밀쳐둔 캐리어만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일정을 중단하고 가야 하나...


눈을 뜨자마자 나도 모르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 걷자, 걸어보자, 지금보다 더 씩씩하고 밝은 모습으로!

어차피 몸속에 들어와 버린 녀석이라면 닦달하며 쫓아내기보다 몸에게 보내는 경고를 받아들이며 살살 달래서 제 발로 나가게 만들면 될 일이었다.

약기운 덕인지 어지러움에 조금 휘청거리긴 했지만 훨씬 나아진 컨디션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렇게나 가보고 싶었던, 곶자왈을 향해!

(지명인줄 알았던 곶자왈이 제주도 여기저기 있음을 와보고서야, 걸어보고서야 알았다)

코로나야, 나랑 며칠만 동무하다가 떠나 주라
정난주 마리아묘
처음보는 동백열매
신평 곶자왈로 향하는 문
곶자왈 낮은 곳에
연못을 지키는 건 개구리?
꽃을 알아보는 나비, 무릉외갓집 낮은 담벼락풍경
폐교를 무릉외갓집(제주농부들)으로


#올레길 #곶자왈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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