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과 내가 생각한 결혼 시기는 내년 가을쯤이었다. 그때가 되면 만난 지 1년이 지났으니 그해 봄부터
준비하면 얼추 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벌써 상견례 이야기가 나오다니.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부모님께 우리가 생각하는 결혼 시기를 말씀드리니
내년 가을보단 아빠의 퇴직 전인 봄에 하는 게
어떻냐고 하셨다. 아빠의 퇴직은 25년 6월 말이라서 현실적인 이유로 가을보단 봄이 나은 건 사실이었다.
우리는 결혼 시기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부모님들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먼저 우리의 의견을
명확히 해야 했다. 결혼식의 당사자는 우리이니
주위 분위기에 휩쓸려 결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분은 나와 결혼을 빨리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내가 부담스러울까 봐 조심스럽다고 했다.
나를 처음 본 순간부터 내게 반했고 사귀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독서모임에서
책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걸 듣고 결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가족에 대한 생각이 자기와 일치해서 신기했고 내가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란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고 했다. 대화도 잘 통해서 결혼 생각이 생겼고 지금까지 만남을 이어오면서 그 생각은 점점 확신으로 굳혀졌다고 했다.
이성에게 반하는 순간은 3초면 충분하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그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되었다니. 놀랍기도 하고 기분이 좋기도 했다. 괜스레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의 장점을 알아봐 준 그분께 참 고마웠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나도 초반부터 그분과의 결혼을 생각했었다. 결혼은 생각하지도 않았던 나인데 결혼이란 단어를 내 머릿속에 부유하게 만든 사람. 그분은 그런 사람이었다.
초반에 그분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북크닉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봤다.
나와 나란히 서있는 그분을 보면서
‘내가 결혼을 한다면 이 분과 하게 될 것 같아.’
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는 아직 서로를 잘 알기도 전인데 어떻게 그런 생각이 든 걸까?
결혼 상대자를 만나면 후광이 비치거나 종소리가 들린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게도 그런 판타지 같은
상황이 펼쳐질까 상상했다. 그런데 그 이야기와는
달리 나는 그런 걸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후광이나
종소리 없이도 결혼할 인연이라는 느낌을 받기엔
충분했다. 썸을 타는 시기였는데도 그 분과의 결혼
생활을 상상할 정도였으니 할 말 다한 셈이다.
비가 오던 어느 저녁날, 우리는 호수공원에 갔다.
산책을 하려고 했는데 비가 꽤 와서 차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의 종착점은 역시나 결혼이었다.
난 결혼에 대한 내 생각들을 말했다.
쓰나미 같은 결혼이 나를 삼켜버릴까 봐 두렵다고.
결혼하고 나면 누구의 와이프, 누구의 엄마로 불리는 게 행복이기도 하지만 그 호칭으로만 불리는 건 싫다고 했다. 누구의 어떤 존재이기 전에 온전한 나 그대로를 존중받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희생정신이 몸에 인처럼 박힌 사람으로 지냈다고 고백했다. 내가 조금 불편해도 상대방이
편한 상황이면 하면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하고 내 몸이 피곤해도 도울 일이 없는지 물어보는 성격이라고.
혼자 끙끙 다 짊어지다가 병이 나면 났지 하기 싫은 건 하기 싫다고, 힘들어서 안 한다는 그 말을 절대 직접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그런 미련한 성격의 소유자.
그게 나였다고.
그런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요즘 대대적인
마음 공사 중이라고 했다. 생각의 틀 자체를 바꾸고 싶었다. 조금은 더 이기적으로 살아도 된다고 나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타인보단 나를 초점에 두고 나의 감정과 나의 상태를 좀 더 살피며 살고 싶었다. 나를 더
우선적으로 챙겨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를 갈아서 타인을 챙겨주고 위해주는
희생적인 면을 고치고 내 몸도 챙기면서 여유가 생기고 여건이 될 때 타인에게 베풀 줄 아는 그런 배려심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담담하게 이 말을 하고 있는데 지난날의 내가 생각나 순간 감정이 훅 올라왔다. 그렇게 지내온 날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또 나 자신에게 너무 미안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두 볼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