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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에르떼 Dec 16. 2024

사랑의 온도

드라마에 나오는 남녀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우연히 만나거나 악연으로 시작해 사랑에 빠졌다.

주변 인물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둘의 사랑은

더 불타올랐고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서사가 대부분이었다.


그 둘의 사랑은 눈물 없인 못 보는 절절한 사랑이었다. 그 정도로 뜨겁게 사랑해야 결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불가마처럼 절절 끓는 뜨거운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말하는 모든 것들을 다 들어주는 마음. 전화 한 통에 모든 걸 다 내버려 두고 달려와줄 수 있는 정성. 어릴 땐 그런 게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살아보니 불가마 같은 사랑을 하기엔 삶은

너무나 바빴다. 사랑 말고도 챙겨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직장에서의 삶도 신경 써야 했고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과 나 자신의 건강 및 체력도 지켜야 했다.


생각보다 삶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체력은 20대만큼 따라주지 못했고 불도저 같은 사랑을 할 여력도 여건도 안되었다. 그런 사랑은 16화에

끝나는 미니시리즈의 남녀 주인공들만 할 법한 사랑이었다.


지글지글 들끓는 뜨거운 열기보다는 온돌에 남아있는 뭉근한 따뜻함. 난 딱 그 정도가 좋았다. 그 정도의

사랑의 온도가 내겐 맞았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분의 사랑의 온도는 나와 꽤 비슷했다.




그분과 나는 각자 다양한 온도의 연애를 하며 지금의 적정 온도를 찾았다. 예전보단 지금의 온도가 좀 더

성숙하고 현실적인 온도이겠지. 이 정도가 결혼으로 가기엔 더 적절한 온도이지 않을까 싶다.


서로에게 호감이 있어 연애를 시작했지만 온도를 맞춰갈 수 없었다면 결혼을 언급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분과 나 모두 연애 초반부터 결혼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연애가 수월하지 않았다면 마음을 접었을 거다.


다행히도 우리는 연애 기간 동안 서로의 본모습들을 천천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콩깍지를 벗겨내고 맨 눈으로 서로의 진면목을 확인하게 되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깊이 있게 서로를 알아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친척분께 결혼을 하게 된 이유를 물었을 때 들었던

답변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

어렸을 땐 되게 차가운 답변이라고 느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공감도 간다.


결혼을 할 시기에 옆에 있는 사람이어서 결혼을 했다는 그 답변은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이유는 아니었지만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이유였다. 타이밍뿐만 아니라 사랑의 온도도 잘 맞아서 결혼을 하신 거겠지.


적당한 시기에 자신과 잘 맞는 사람을 만나는 건

큰 행운이다. 알맞은 타이밍에 서로가 추구하는

사랑의 온도가 맞는 사람을 만나긴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런데 지금 내게 그런 행운이 찾아왔다.

그분이 내게 행운을 안겨주었다.




연애 못지않게 결혼 생활도 얼마든지 로망이 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말 그대로 삶, 생활이다.

나와 타인이 한 집에서 가정을 이뤄 남은 생을 함께

하는 삶이다. 단편적인 게 아니라 지속적인 관계.

그 관계를 함께 가꿔나가며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결혼이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에서 서로에게 따뜻한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사람.

삶이 힘들게 할 때 함께 그 짐을 덜어줄 수 있는 사람. 작고 약한 배지만 서로를 믿고 한 배를 탈 수 있는 사람. 결혼은 그런 사람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그분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분과 남은 인생을 함께 하며 같이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 오는 저녁날, 차 안에서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은 나의 속마음을 그저 들어주는 그분의 눈빛, 나의 눈물을 닦아주는 그분의 손길은

나의 생각을 더 확실하게 했다. 우린 서로의 좋은 친구이자 동료, 든든한 조력자가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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