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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에르떼 Nov 25. 2024

안녕이라는 무게

우리는 연애 초반부터 결혼 이야기를 나눴다.

결혼생활에 대한 로망에서 현실적인 이야기까지.

서로가 결혼을 염두에 두고 만남을 시작했기에

결혼 이야기가 부담스럽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30대로 들어서면서 누군가와 만남을 시작한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확실히 20대보다 생각해야 할 부분들이 많았다.

상대방에 대한 가벼운 호감만으로 연애를 시작하기엔 서로의 시간이 너무나 귀했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결혼은 중요한 대화 주제였다.

아직은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이니 결혼을 말하기엔

이를 수 있지만 우리는 그만큼 진지하게 만남을

이어가고 있었다.




만난 지 2개월이 된 어느 날, 그분의 사촌 결혼식이

있었다. 그분은 조심스럽게 나에게 결혼식에 함께

가자고 말했지만 난 부담스러웠다.

친구 결혼식도 아니고 가족 결혼식이라니…


그분과 결혼을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벌써

그분의 일가친척들을 만나는 건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고민 끝에 미안한 마음을 안고 거절을 했다. 그분은 나를 이해한다며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당연히 부담스러울 수 있는 자리라며 다음에 이런

기회가 생기면 그땐 같이 가자고 말해줬다.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 그분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내가 연애를 시작하니 부모님은 내가 만나는 분을

궁금해하셨다. 결혼 생각도 하고 만나고 있다고

말씀드리니 더 궁금해하시는 눈치셨다.

우리 가족과 깜순이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으로

놀러 오던 날, 우리 가족과 그분의 만남은 성사되었다.


어색한 분위기가 될까 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단 괜찮게 흘러갔다. 하지만 긴장을 늦출 순 없었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몰랐던 점심 식사를 끝내고 그분과 내가 자주 가던 찻집으로 갔다.


결혼을 생각하고 있냐는 아빠의 말씀에 그분은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다고 답했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질문을 하셨는데 침착하게 답변하는 그분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부모님과 동생도 말로만 들었을 때보다 실제로 보니 훨씬 괜찮다고 했다. 자취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의 강아지 깜순이도 처음 보는 그분께 살갑게 다가갔다. 마치 가족이 되리란 걸 알듯이 말이다.




그분과 우리 가족이 만났으니 이제 내 차례가 되었다.

일주일 후 나는 그분의 부모님을 만나 뵈었다.

처음 뵙는 자리라 단정하게 차려입고 나갔는데

무심하게도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그 비를 뚫고 겨우 도착한 식당에서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원래는 괜찮았는데 막상 식당에 오니 긴장이 되어 심장이 두근 세근 뛰었다. 문득 창 밖을 보니 어느새 비는 그쳐 있었다. 때마침 그친 비를 보며 앞으로 우리의 앞길도 비 온 뒤 맑은 날씨처럼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그분의 부모님은 감사하게도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그럼에도 나는 떨리는 마음에 소고기를 먹어도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긴장되어 평소보다 못 먹으니

그분의 부모님께서는 더 먹으라며 고기를 챙겨주셨다.

그리고 그 찻집에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나가기 전 사진도 함께 찍었다.


처음 뵈었지만 불편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분의

아버지가 우리 아빠와 같은 직업을 가지고 똑같이

공수부대를 제대하신 분이라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그분들의 눈빛에서 햇살 같은 따스함이 느껴졌다. 같은 카메라 앵글에 담긴 내 모습은 살짝 얼어 있었지만 그 또한 생경한 경험이었다.




각자의 부모님을 만나 뵙고 나니 뭔가 마음가짐이

달라짐을 느꼈다. 우리끼리 만나서 연애할 때보다

좀 더 무게가 생긴 느낌이었다. 하지만 부담스럽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가 바라던 바였다.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던 우리였기에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는 건 서로 동의했던 거였다.

그분은 말했다. 우리가 서로의 부모님을 만나 뵙고 나면 우리 사이의 속도는 전보다 빨라질 거라고.

나는 단지 인사만 드린 거뿐인데 그럴 리가 없다며

웃어넘겼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보기 좋게 틀렸다.

서로의 부모님을 만나 뵌 지 한 달이 지날 무렵,

그분의 집에서는 스멀스멀 상견례라는 단어가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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