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시작된 카톡으로 우리는 쭉 연락을 이어갔다.
출근길 안부를 묻고 서로의 점심 식사 메뉴를 궁금해하며 퇴근 후 일상을 공유하는 톡까지.
그래 맞다. 썸을 타고 있었다.
그리고 저녁마다 통화를 했다.
처음에는 전화까지 할 사이인가 했지만
나중에는 지금 통화할 수 있냐는 그분의 카톡이
기다려졌다.
그분과 통화를 하면 시간이 금방 갔다.
그분의 이야기를 듣는 게 재밌었고
내 이야기도 잘 들어주셔서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무엇보다 폰 너머로 들려오는 그분의 목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그 이후로 지난 북크닉 때 단체로 찍은 사진을 더 자주 들여보게 되었다.
모든 컷마다 내 옆에 있는 그분의 모습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내 옆에서 나란히 서 있는 그분의 모습은
내가 예전부터 생각했던 배우자의 느낌과 비슷했다.
듬직하고 든든한 아빠의 모습이 보였고
티 없이 웃는 모습이 해맑아 보여서 좋았다.
그분의 큰 덩치 덕분에 내가 작아 보이는 것도 좋았다.
그렇게 며칠 동안 통화와 연락을 주고받던 우리는
목요일 저녁 약속을 잡았다.
그분께서 내가 좋아하는 면 요리를 함께 먹자고
제안해 주셨고 나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약속시간이 다가오고 뭔가 모를 긴장감과 설렘에
기분이 붕붕 떴다. 그분은 북크닉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옷을 입고 왔다. 은은한 향수의 잔향과 함께
색다른 그분의 모습에 긴장 지수와 설렘 지수가
로켓처럼 솟아올랐다.
밥을 먹기로 한 곳은 생각보다 좀 먼 곳이었다.
차를 타고 40분 이상은 가야 했다.
차 안에서 단 둘이 그 긴 시간을 가야 하다니...!
어떡하지 무슨 말을 하면서 가야 할까?
조용한 침묵이 더 어색할 것 같아 쉼 없이 말을 하자고 다짐하며 차에 탔다. 약간의 떨림과 두근거림,
긴장감과 어색한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나는 차에 타자 마자 준비한 이야깃거리를 풀어놓았다.
다행히 그분은 나의 말을 재밌게 들었고 리액션도 잘해주었다. 분위기도 금방 편해져서 나는 좀 마음이 놓였다. 그분은 나의 이야기를 듣는 게 재밌다며 더 해달라고 했다.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그분이 고마웠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동네보단 조금 분잡한 곳이었다.
수많은 연인들 사이에서 우리는 손이 닿을 듯 말듯한 거리를 유지하며 걸었다.
메밀면을 먹으며 난 그분에게 궁금한 점을 물었다.
흡연 여부와 오토바이 탑승 여부에 대해 물었고
모두 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다.
속으로 그럼 됐다. 싶었다.
나무를 좋아한다는 내 말을 기억한 그분은 오래된
나무가 있는 공원으로 날 데려갔다.
청귤 에이드를 마시며 함께 공원을 걸었는데
입 안에 맴도는 상쾌한 청귤향 덕분에 기분이 더 좋았다.
커다란 은행나무 앞에 앉아서 그분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운동을 하게 된 계기, 군대에서 있었던 일,
그리고 가족 이야기를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 아버지라고 했다.
자기는 아버지처럼 되는 게 목표라고 했다.
가족을 위해 책임감 갖고 일하시고
어머니와 알콩달콩 사이좋게 지내시며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시는 분.
자기도 그런 아버지의 길을 걷고 싶다고 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듣는데 그분이 참 멋진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분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든든하고
단단한 사람이었다. 인생을 살며 겪었던 고난도
스스로의 힘으로 잘 이겨내고 따뜻한 가족의 품에서 사랑을 받으며 건강하게 잘 자란 멋진 남자였다.
장녀의 삶도 좋았지만 때로는 나도 기댈 존재가 필요했다. 그래서 든든한 사람이 좋았다.
정서적으로도 안정되고 신체적으로도 건장한 그런 사람을 찾았다.
내가 의지할 수 있고 또 그 사람도 내게 의지할 수 있는 그런 관계를 원했다.
그런 내게 운명처럼 그분이 나타났다. 안정적인 관계를 같이 꾸려나가고 싶고 함께 미래를 꿈꾸고 싶은 사람을 찾던 내게 그분은 봄날의 기적처럼 내 앞에 나타났다. 그분은 내가 원하는 사람이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봄날 저녁,
500년이 넘은 커다란 은행나무 앞에서
청귤 에이드의 잔향이 남아있는 그곳에서
나는 고백을 받았다.
그날 이후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