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살 냄새가 진하게 배긴 옷을 입고 밤거리를
달렸다. 거리의 불빛은 일렁였고 그 불빛들은 그분이
이야기한 촛불을 떠올리게 했다.
그날 밤 엄마와의 통화에도 어김없이 그분의 촛불
이야기가 나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이야기가 꽤나
인상 깊었나 보다. 하긴 요즘도 종종 생각나는 거 보면
그 분과 나는 어떻게든 될 인연이었던 거다.
며칠 뒤 소모임에 공지가 떴다.
호수공원에서 북피크닉을 진행한다는 소식이었다.
잔디밭 위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맛있는 걸 먹으며 책을 읽는다니... 이거야말로 내가 꼭 해보고 싶었던
낭만이 아니던가.
부리나케 참가 버튼을 누르고 간간이 생각날 때마다
누가 오는지 궁금해서 참석자를 살펴봤다.
그때 눈에 익은 이름이 보였다.
그때 촛불 이야기를 해주신 그 남자분이었다.
그분이 나온다니 반가운 마음이 절로 들었다.
시간은 흘러 드디어 북피크닉 당일이 되었다.
간단하게 읽을 책으로 짧은 시집을 준비해 갔다.
4월이지만 아직 저녁에는 쌀쌀해서 포실한 카디건도 걸쳤다.
그곳에는 반가운 얼굴도 있었고 처음 뵙는 분도 있었다. 처음에는 언제나처럼 쭈뼛쭈뼛했다.
약간은 뻘쭘하게 신발을 벗고 돗자리에 앉았다.
우연인지 그분은 또 내 옆에 앉았다.
그분의 손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 들려있었다.
우리는 찜닭과 떡볶이를 시켜놓고 음식이 오기 전
인생 영화 이야기를 시작했다.
각자 돌아가며 자기의 인생 영화를 이야기했고
내 차례가 오기 전 무슨 영화를 말할까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영화 ‘노트북’이 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더 감동받은 영화였다.
그분은 인생 영화로 ‘대부’를 말했다.
계속 양반다리로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다리가 너무 저렸다.
자세를 바꾸려고 몸을 이리저리 꼼지락 거리다가 그만 그분의 무릎과 내 무릎이 닿고 말았다.
화들짝 놀란 나는 죄송하다고 했다. 그 이후로는 자세를 바꾸기가 몹시 조심스러워졌다. 그분은 괜찮다고
했지만 내 마음은 괜찮지가 않았다. 그 분과 부딪혔던
무릎 언저리가 화끈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 찜닭과 떡볶이가 왔고 우리들은 책은
저 옆에 밀어 두고 먹는 것에만 집중했다.
4월의 어느 봄날, 낯설지만 친숙한 사람들 속에서
떡볶이를 씹고 있는 내 모습은 전혀 상상하지 못한
그림이었지만 이 또한 좋았다.
그렇게 배를 채운 뒤 소화를 시키자며 다 같이 호수공원을 걷기로 했다. 삼삼오오 모여 스몰토크가 시작되었고 또다시 우연처럼 나는 그분과 함께 호수공원 둘레길을 걷고 있었다.
퇴근 후 주로 뭐 하냐는 그분의 질문에 나는 운동을 하러 간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분은 자기도 운동을 좋아한다며 다음에 같이 달리기를 하자고 했다. 그쯤 동네에 달리기를 하는 분들이 많아져서 나도 궁금했던 찰나였다.
좋다고 답변을 하는 동시에 내 등 뒤에서 자전거가 휙 지나갔다. 그분은 팔을 뻗어 내가 자전거에 부딪히지 않게 도와주셨다. 그분의 민첩성에 놀란 건지 자전거에 놀란 건지 내 마음은 콩콩 뛰고 있었다.
모임장님께서 호수공원에 온 기념으로 단체샷을 찍자고 했고 우리들은 풍경이 예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역시나 그분은 또 내 옆자리에 서있었다.
그 분과 나란히 서서 여러 컷 사진을 찍고
결과물을 봤는데 나름 잘 나와서 만족스러웠다.
다시 돗자리에 앉은 우리들은 먹은 것을 정리 후
밸런스 게임을 했다. 그리고 대화의 장 카드로 여러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서늘해진 바람과 함께 우리들의 대화도 더 심도 깊어졌다.
인생의 가치관, 힘들었을 때 이겨낸 방법,
여사친/남사친에 대한 생각, 첫사랑 이야기,
현재 삶에 만족하는가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은 벌써 저녁으로 내닫고 있었다.
그 대화를 하면서도 그분의 답변에 귀가 더 열렸고
더 집중해서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분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나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느꼈다.
신기했다.
즐겁게 대화를 나눈 뒤 모임은 끝이 났고 다들 정겹게 인사를 나누며 주차장에서 헤어졌다.
호수공원이 그 분과 나의 동네여서 우리만 걸어갔다.
그 분과 나란히 걸으며 오늘 모임에서 느꼈던 감정을 서로 이야기했다.
서늘하게 불어오는 봄바람,
뭔가 모르게 몽글몽글 피어나는 감정들을 뒤로하고
공원의 끝에 다 달아서 나는 그분께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를 했다.
그때 그분이 나를 불러 세웠다.
“잠시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