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에 나가고자 마음을 먹은 후 소모임 어플을 깔고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다양한 독서모임이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공통의 관심사를 갖고 모이는구나. 내게는 또 다른 차원의 세계가 열린 느낌이었다.
미리 읽을 책을 정해두고 만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각자 자유롭게 독서를 하고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곳도 있었다. 나는 후자가 더 마음에 들었고
그 모임에 가입 버튼을 눌렀다.
가입 인사를 쓰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두근 세근 한데 오프라인 모임에는 어떻게 나가지? 걱정반 설렘반으로 나간 모임은 생각보다 더 만족스러웠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시간들이 참 좋았다.
그 후론 시간이 날 때마다 독서 모임에 참여했고 그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건강한 이야기를 나누며 내 생활도 점점 다채로워짐을 느꼈다.
그날도 평소와 같이 독서 모임에 참여한 보통의 하루였다. 평소보다 일찍 도착한 나는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어떤 남성분이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얼핏 보기엔 덩치가 꽤 큰 듯했다. 평소에도 덩치가 큰 사람을 좋아했던 터라 눈길이 갔다. 전보다 조금 불편하고 긴장된 마음으로 독서를 이어갔다. 쉬는 시간이 되고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우연히 그 분과 마주쳤다.
그분은 내가 생각했던 거보다 덩치도 크고 키도 컸다. 평소 나보다 키 큰 사람을 잘 보지 못해서 신기했다.
바로 앞자리에 앉았으니 인사 정도는 해도 되겠지? 싶어서 인사를 했는데 그분의 낮은 음정은 왠지 모르게 무섭게 느껴졌다.
나를 내려다보는 눈빛과 무겁게 깔린 그의 목소리는 곧 후회로 다가왔다. 괜히 인사했나 보다.
뻘쭘하게 자리로 돌아간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히 있었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 짧게 자기소개의 시간이 있었다. 그분은 어디서 온 몇 살의 누구라며 야무지게 자기소개를 했다. 나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니.
내적 친밀감이 확 생긴 순간이었다.
내가 가져간 책은 인생과 바다를 결부지은 철학책이었는데 그중 감명 깊은 챕터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챕터는 등대에 대한 이야기였다. 바다 위에서 길을 잃은
항해자에게 길을 알려주는 버팀목 같은 등대.
필자는 당신에게 등대 같은 존재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맞은편 그분은 내게 등대 같은 존재가 있냐고 물었다. 헤매고 있을 때 버팀목이 되고 지쳐 쓰러졌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되는 존재, 내게 그런 존재는 가족이었다.
그러자 그분도 자기도 같은 생각이라며 어릴 적 부모님과 있었던 일화를 들려주었다. 그 동네에는 정전이 잘되어서 그날도 어김없이 촛불을 켜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촛농이 다섯 살 남짓한 남자아이 배 위로 떨어졌고 걱정된 부모님이 한달음에 부둥켜안고 촛불로 상처를 살펴보셨다던 이야기.
노오란 촛불의 일렁이는 불빛이 여기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따뜻하고 포근한 가족의 사랑이 담긴 이야기였다. 요즘은 가족보단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데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니. 반가웠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하러 길 건너 갈매기집으로 갔다. 식당의 사모님과 친밀해 보이는 그분의 모습을 보고 성격이 매우 좋은 분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분은 우연하게도 나의 옆자리에 앉았는데 내가 하는 이야기를 경청하며 여러 질문도 던졌다. 동생과 강아지와 글램핑을 다녀온 이야기를 했더니 강아지 사진을 보여달라고 했다. 강아지를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맛있게 저녁을 먹고 그 분과 다른 분은 나를 앞서 걸었다. 큰 키와 떡 벌어진 어깨. 나는 뒷따라 걸어가며 생각했다. 뉘 집 아들인지 아주 든든하게 잘 키우셨구나.
다 같이 인사를 하고 차에 앉아 시동을 켰다. 나와 같은 동네에 사시는 그분도 지금 출발하시려나? 그런데 그분은 본인 차 옆에서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기만 할 뿐 출발할 낌새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뭐 하시는 걸까? 생각하며 나는 그분을 지나쳤다.
그땐 몰랐다. 그분이 내 연락처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