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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by 수에르떼 Feb 24. 2025

웨딩 촬영용 드레스를 고르고 2주가 지나

촬영날이 다가왔다. 원래는 별다른 소품 없이

간단하게 찍을 생각이었다. 그분과 내가 만난 계기가 독서모임이었으니 책만 챙겨가서 찍을 요량이었다.


그런데 막상 촬영날이 다가오자 소품 없이 촬영하면 후회가 남을 것 같았다. 실은 신혼집 인테리어 업체를 고르고 공사 현황을 지켜보느라 웨딩촬영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파김치처럼 피곤에 절여 살다가

촬영 전날이 돼서야 이대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랴부랴 준비를 한 것이다.


전날에 소품을 구할 수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모든 게 다 있는 다이소 덕에 원만하게 소품들을 구매할 수 있었다. 케이크는 파리바게트에 가서 귀여운 하리보 케이크로 골랐다. 전날 후다닥 준비를 한 것치고 그런대로 소품들을 잘 준비한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드디어 웨딩촬영하는 날이 밝았다. 2주 만에 급격히

추워진 날씨에 몸은 얼어붙었지만 마음만큼은

두근두근 설렘으로 봄이 찾아온 것 같았다.

동생도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웨딩촬영하는

나와 그분의 모습을 남겨주기 위해 함께 해주었다.

동생과 함께 하니까 더 든든하고 좋았다.


맨얼굴로 메이크업샵 거울 앞에 앉아있으니 뭔가

모르게 쑥스러움이 밀려왔다. 전문적으로 화장을

받아보는 건 처음이라 어색하기도 하고 화장이 잘

되어야 할 텐데 걱정도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그 모든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더해지는 붓터치에

나는 정말 새로운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생머리였던 헤어스타일도 원장님의 손길을 거치니

예쁜 웨이브로 변신해 있었다. 신데렐라가 요정할머니를 만난 기분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나의 색다른 모습에 동생과 그분도 놀랐지만

제일 놀란 건 나였다. 나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다니

정말 신기하고 놀라워서 뚫어져라 거울을 쳐다봤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라고 묻던 백설공주의 왕비 마음이 이해가 될 지경이었다. 얼마나 자기 미모에 자신이 있었으면 거울에게 그런 질문을 했을까. 하마터면 나도 거울에게 똑같은 질문을 할 뻔했다.




헤어와 메이크업을 마친 그분의 모습도 정말 멋졌다.

평소에 캐주얼한 느낌도 좋지만 이렇게 힘줘서 제대로 꾸민 모습을 보니 색달랐다. 역시 헤어와 메이크업이 주는 힘은 어마어마했다. 예쁘고 멋지게 변신한

우리는 스튜디오로 이동해서 본격적인 촬영 준비에

들어갔다.


커다란 카메라 렌즈 앞에서 예쁜 표정과 다양한

제스처를 취할 생각을 하니 긴장이 되었다. 다행히

유쾌한 사진작가님을 만나서 밝은 분위기에서 촬영할 수 있었다. 헬퍼 이모님께서도 세심하게 챙겨주시고

칭찬도 많이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전날 준비해 간 소품들도 요긴하게 잘 활용해서 뿌듯했다.

 

초반에는 어색해서 삐걱삐걱했지만 촬영 장수가

늘어날수록 익숙해져서 자연스러운 표정이 나왔다.

특히 그분이 직접 골라준 드레스를 입었을 때는

자신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예쁜 드레스에 찰떡같은 화장을 하니 천군만마를 등에 업은 느낌이었다.

그래서일까 평소보다 흥이 더 오른 나는 아주

또렷하게 카메라를 쳐다보며 마치 프로 모델처럼

다양한 포즈를 취했다.




예쁘다고 칭찬해 주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그런가 그날만큼은 내가 정말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나까지도 내적 댄스를 추고 있었다. 정말 행복하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 모든 건 다 그분을 만난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결혼 생각은 아예 없었던 내가 귀중한 인연을 만나

웨딩드레스를 입고 이렇게 카메라를 보고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오전부터 시작한 촬영은 오후 늦게 끝이 났다.

예쁜 드레스를 입고 다양한 액세서리도 걸치고

하하 호호 웃으며 촬영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현장을 밝게 이끌어주신 작가님께 정말 감사했다.

그리고 작가님을 따라다니며 나와 그분의 모습을

휴대폰 카메라로 정성스럽게 담아준 동생에게도 정말 고마웠다. 주중에 일한다고 피곤했을 텐데 나를

위해 긴 시간 동안 함께 해준 동생의 마음이 참 예뻤다.


동화처럼 꿈결 같은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현실로 돌아와 소품들을 정리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고깃집에

갔다. 츄리닝 차림에 진한 화장과 속눈썹을 붙인 채

인파 속에 묻혀서 고기 먹방을 시작했다. 웨딩 촬영할 땐 배가 고픈지도 몰랐는데 그제야 허기가 몰려왔다. 그날 먹었던 고기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맛있었다.

웨딩촬영이라는 긴 대장정을 함께한 동지들과 함께여서 더 뜻깊은 고기 먹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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