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요즘 한동안 미드저니(이미지 생성 제너레이티브 AI)로 이것저것 만들어보면서 재미를 느끼고 있었는데요, 정말 놀랍습니다. 제 그림을 몇 초만에 실사로 만들어주더라고요.
이런 AI가 가져올 변화를 일컬어, 전문가들은 '예술의 민주화'라고 하더군요. 카메라가 발명되고 보급된 걸 생각하면 쉬울 것입니다. 옛날엔 특수한 기술이 있어야만 풍경을 기록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누구나 사진을 찍고 보정할 수 있는 것처럼, 이제 누구나 '민주적으로' 그림을 만들 수 있다는 거죠.
아니,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이게 권력이었다니... 이건 좀 억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건 역사를 통틀어 늘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나저나 그림이 진짜 민주화된다면, 이제 누구나 그림을 쉽게 생성할 수 있게 된다면, 이제 이 시장은 어떻게 바뀌게 되는 걸까요? 저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이런 예측이 맞을지는 모르지만, 정말 AI를 압도하는 말도 안 되는 테크닉을 구사하거나, 혹은 강력한 정체성을 가진 창작자만 남게 되는 게 아닐까요? 그림을 잘 그리지 않아도 독특한 정체성을 가진, 새로운 부류의 창작자들이 시장에 새로 진입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그들이 기존의 창작자보다 훨씬 나을 수도 있지요.
기술이 발전할수록, 기술이 노동이나 네트워킹을 대신해 줄수록 개인의 차별성만 남는 것 같습니다.
그림 창작이 작가의 개성, 독창성을 드러내는 행위가 된 것은 근대 이후부터입니다. 18세기 이전의 화가는 귀족의 주문에 따라 그림을 그리는 고용자였지만, 중산층이 지배 계급이 되고 시장 경제가 발달하면서부터 화가는 독창성과 개성을 가지고 경쟁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시장을 극도로 효율적으로 만드는 인터넷이란 수단을 통해, 우리는 더욱 빠르게 작품을 관람하고 작가를 알아갈 수 있게 되었지요.
이제는 SNS에서 대단히 효율적인 방식으로 빠르게 창작자의 독창성을 확인할 수 있게 되습니다. 심지어 창작자가 그 독창적인 것을 만들기 위해 어떤 고민을 했는지, 지금 뭘 하는지, 일상 속에서 어떤 스타일로 살아가는지까지 다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우린 엄청나게 많은 창작자를 한꺼번에 봅니다. 어쩌면 정보의 과포화상태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매일 매일 살롱에 드나드는 것과도 비슷하겠네요.
그런 면에서 창작 시장도 점점 개인의 날카로움을 요구하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뭔가 더 특별한 그런것이 요구되죠. 그런데 동시에 진정성도 요구됩니다. 작가의 삶의 방식, 생각, 윤리관, 히스토리...이런 것들도 중요해졌죠. 창작자의 특수한 지점, 뾰족한 지점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건 AI가 아니라도 늘 있어왔던 변화였습니다. 이런 흐름이 단절되는게 아니라, 오히려 AI로 인해 가속화된다면 아마 앞으로는 더욱더 자신이 가장 날카로울 수 있는 곳, 가장 특수하고 독보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하는 게 아닐까요?
어쩌면 창작의 세계는 늘 고유함이 미덕이었기에 이건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 적당히 고유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위기감을 저도 느끼고 있습니다.
남의 재능을 부러워해서 내 것이 아닌 것을 쫓거나 엉뚱한 롤모델을 쫓아 과거로 회귀하지 말라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날카로움을 갈고닦기 위해 쫓아야 할 건 자신의 삶이고 자신이 해야 할 일입니다. 도전거리와 집착을 구분해야 할 필요는 있겠습니다만, 버릴 것은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진정으로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합니다. 자신을 배반하지 말아야 하고요. 자신을 속이지 않는 그 아주 작은 영역이 자신의 날카로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