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의 날카로움을 찾기 위해서
앞에서 이제부터는 자신의 좁은 영역에서 독보적이 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신만의 영역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사실 이것이 바로 문제가 아닐까요?
제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그걸 찾기 어려운 매우 큰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자기혐오'였습니다.
자기혐오란 말이 좀 과격하긴 하지만, 사실 어디 멀리 있는 게 아닙니다. 자기혐오란 '난 내가 싫어!'라 말하는 그런 게 아닙니다. 제가 느끼는 자기혐오란, 내게 이미 주어진 것 작은 것으로 여기고 다른 것을 더 크게 여기는 태도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내적 자원을 하찮게 여기고 내게 없는 다른 것을 추구하며 쉽지 않은 길을 일부러 가려고 하는 그런 모습이죠. 과격한 무언가가 아니라 은은하게 일상 속에 함께 하면서 내 선택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가지고 있는 몇몇 성향에 대해 그게 너무나 당연했기 때문에 큰 가치를 두지 않았습니다. 생각이 너무나 많고 나무보다는 숲을 보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걸 오히려 한편에서는 부끄러워했습니다. 예술가답지 못한 것이라고 느꼈고 고루하고 고지식한 것이라고 생각했죠. 무슨 도인처럼 보이는 것도 싫었고요. 더 일상적이고, 내밀하고, 구체적인 삶의 디테일과 같은 그런 것을 동경했습니다.
어쩌면 '자기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하라!'라는 슬로건엔 큰 오해가 있을지 모른다고 느낍니다. 흔히 자신이 동경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게 자기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추구하는 것과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의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저는 제가 자리잡지 못하던 시기의 저를 되돌아보고 나서, 자기애로 포장된 자아 뒤편에 얼마나 뿌리 깊은 자기부정이 존재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이상함을 들키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하면서요. 그런데 그 이상함을 허용해야만 부조화를 해소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최대로 이용해야만 나 자신의 역량을 최대로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 그것이 나의 날카로움의 씨앗이고 독특한 무언가가 될 수 있는 잠재성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혐오는 단지 심리적 문제가 아니라 결국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가능성을 막고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입니다. 그 뿐 아니라 그 상태로 앞으로 열심히 나갈 수록 이상하게 퇴행하게 되죠. 처음엔 시행착오로서 필요한 과정일 수 있지만 10년 20년 그런 상태가 계속되어 역량이 최고조에 달해있어야 할 시기까지 그렇다면, 그건 그냥 자기 자신을 스스로 틀어막고 있는 거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당연히 갖고 있고 늘 함께 하는 것은 자신에겐 별 것 아니지만 남에게는 갖지 못해서 절실한 무언가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계발되기 전의 날 것으로는 아무것도 못 할 텐지만, 몇 년을 갈고닦고 나면 누구도 넘보지 못할 것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그런 부분을 인정하고, 그걸 부끄러워하지 않고, 제 삶에 유용하다면 발전시키고 이용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과정에서 제 자리가 생겼고 그걸 또 좋아하고 필요로 해주는 사람도 나타났고, 무엇보다 제게 있던 흔들림이 많이 완화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혹시 창작자의 정체성을 찾아 바깥으로 헤매고 있다면, 자신이 늘 피하고 싶었던 나의 이상한 모습을 한번 들여다보세요. 단서는 멀리 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