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이내 사진만 쓰자구요.

by 새벽나무

대중들은 여가시간에 주로 무엇을 할까?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을까? 활동적인 스포츠를 즐길까? 좋아하는 공연을 보거나 여행을 하기도 하겠지? 따뜻한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TV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루 종일 일터에서 지친 나를 즐겁게 해주고 행복을 준다면 그 어떤 것도 멋진 여가생활이 될 것아다. 방송계나 공연계나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대중의 선택을 받기 위한 전쟁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몇 년 전 HD TV가 방송되기 시작했을 때 수많은 연예인들은 너무 세밀하게 찍히는 카메라 때문에 피부 관리나 주름 관리에 목숨을 걸었었다고 하니 말이다.


공연계도 다르지 않다. 예전엔 오페라라고 하면 그저 몸집이 좀 비대(?) 한 성악가들이 나와서 유명한 아리아 몇 곡 부르는 근사하긴 하지만 재미는 없는 장르라는 인식이 강했다. 오죽하면 오페라 관련 책 제목이 <뚱뚱한 여자들이 부르는 노래> 라고 했을까? 그런데 오페라 캐스팅의 이런 판도를 바꾼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러시아 출신 세계적인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다.


그녀는 모델 같은 외모와 뛰어난 성량으로 데뷔 후 단번에 세계 성악계의 히로인으로 등극했다. 그녀가 데뷔한 이후 잘츠부르크 오페라 페스티벌을 녹화했던 DVD에서는 뚱뚱한 여주인공이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주인공의 외모가 관객들에게 매력적으로 비춰지느냐가 관건이 되었다는 뜻이겠지. 우리가 잘 아는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도 무대에 서기 위해 평생을 다이어트와 싸웠다고 한다. 떠도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는 ‘촌충 다이어트’를 했었다는 설도 있다. 다이어트를 위해 기생충까지 이용했다지.


지금은 타계했지만 세계 성악계에 다니엘라 데시 라는 소프라노 가수가 있었다. 그녀는 세계 top5 안에 들만큼 연기력도 좋고 노래도 잘 하는 오페라 가수였다. 그녀는 유명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여주인공 비올레타 역에 캐스팅되었다. 그러나 프랑코 제피렐리 라는 영화감독 겸 오페라 연출가의 반대 때문에 그 역을 포기해야만 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비올레타는 그렇게 뚱뚱해서는 안됩니다.”

“아니 내가 어디가 뚱뚱하다는 거죠? 나는 75kg밖에 나가지 않는다구요!”

하지만 연출가의 뜻은 단호했다. 다니엘라 데시는 눈물을 머금고 여주인공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그녀는 1년간 혹독한 다이어트를 해서 64kg까지 감량을 하고 1년 뒤 비올레타 역으로 다시 화려하게 무대에 설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공연의 주인공이 매력적이어야 관객들의 관심을 갖는 시대가 되다 보니 캐스팅 과정부터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비슷한 실력이라면 좀 더 외모가 근사한 예술가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방송계나 뮤지컬계에 비하면 외모지상주의에서 조금은 자유롭다고 생각한 공연예술계가 관객들의 몰입을 위해, 공연의 완성도를 위해 매력적인 출연자들을 선호하게 되자 실제 연주자들도 자신들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 프로필 사진에 공을 많이 들이고 홍보용 사진을 더욱 신경써서 관리하고 있다. 물론 이런 관리는 세계적인 연주자가 속해있는 매니지먼트사가 주도적으로 하고 있는데 대부분은 그 연주자의 전성기 때 사진을 쓰거나 아름답고 멋진 사진을 홍보용 사진으로 쓰곤 한다. 그러다 보니 웃지 못 할 상황도 생겨난다.


한 번도 한국에서 공연한 적 없는 피아노 듀오의 공연을 내가 몸담고 있는 극장의 콘서트홀에서 기획공연으로 준비한 적이 있었다. 그 공연을 준비한 후배는 해외매니지먼트사로부터 받은 사진으로 포스터와 전단을 만들고 ‘최초의 내한공연’ 임을 강조하며 마케팅에 열심이었다. 공연 사진으로 보이는 두 자매는 각자의 개성으로 너무나 아름다운 외모를 뽐내고 있었고 공연프로그램도 애호가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프로그램이었다. 후배는 공연의 성공을 확신했고 공연일 하루 전 한국에 도착하는 두 자매를 영접하러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두 자매를 맞이한 후배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분명 홍보용 사진으로 본 젊고 아름다운 두 여성을 기대했는데 공항게이트를 통과하여 자신에게 다가온 여인들은 초로의 중년을 넘어 노년에 가까운 여인들이었던 것이다. 물론 피아니스트가 실력만 좋으면 됐지 나이나 외모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마는 후배기획자는 실제 모습과 사진의 모습이 너무 차이가 커서 관객들이 환불을 요구하면 어떻하나... 하는 걱정까지 하게 되었다. 드디어 공연 당일 무대에 등장한 외모와 프로그램에 실린 이미지가 너무 달라서 당황한 관객이 있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연주는 기막히게 좋았다. 다행히 출연자의 외모 때문에 환불을 요구한 관객도 없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오페라 <돈 조반니>를 기획했을 때 이 공연의 주인공인 돈 조반니 역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로 중요한 결정을 앞둔 적이 있었다. 대개 남자 성악가 특히 테너 성부의 성악가 중엔 키 크고 멋진 외모 보다는 키 작고 배 나온 성악가가 대부분이라 바람둥이 역을 소화해야 하는 돈 조반니 역에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관객들이 보기에 한눈에 봐도 매력적으로 보여야 바람둥이 역할을 잘 소화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악가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매니지먼트사로부터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소속 테너 한 사람을 소개받았는데 그의 프로필 사진을 보고 나는 한눈에 끌렸다. 딱 돈 조반니 역에 어울리게 탄탄한 체격과 큰 키를 장착한 잘 생긴 외모의 소유자였다. 즉시 계약서를 만들고 연습스케줄과 공연일정을 알려주고 즉시 계약을 했다. 마침내 그가 한국에 도착하는 날이 되었다. 후배 기획자들이 공항으로 마중 나가고 나는 호텔에서 그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호텔 문을 열고 그가 로비에 나타났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 속에 봤던 멋진 테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적당히 희끗해진 머리를 질끈 묶고, 세월의 풍파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주름을 가진, 배도 약간 나온 중년의 아저씨가 웃으며 다가오는 것이었다. 우리가 공연 포스터나 전단에서 보면 예쁘고 멋진 사진이었는데 정작 공연장에 가보면 전혀 다른 외모의 사람이 출연해서 흠칫 놀랐던 적이 종종 있을 것이다. 딱 그 상황이었다.


과연 그가 희대의 바람둥이 역을 잘 할 수 있을까? 관객들은 공연을 보며 그에게 매력을 느낄 수 있을까? 연습기간 내내 기획자로서 나는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연습이 시작되고 그것은 기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그의 노래 실력은 녹슬지 않았고 빼어난 성량과 연기력으로 바람둥이 돈 조반니 역을 멋지게 펼치고 돌아갔다.


공연을 만드는 기획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준비하는 공연이 최고이길 바란다. 그래서 이왕이면 노래도 잘하고 외모도 뛰어난 캐스팅을 하기 위해 자신의 인맥, 정보력을 총 동원한다. 하지만 돈 조반니 사건 이 후 저는 공연을 기획하고 캐스팅할 때마다 그 가수의 프로필 사진이 언제 찍은 사진인지 꼭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매니지먼트사에 종종 요구한다. ‘찍은 지 3년 이내의 사진으로 보내주세요!!’


모든 상거래에는 공정거래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고가의 입장료를 내고 공연을 보는 관객들에게도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제 찍은 사진인지 꼭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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