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내가 이맛에 일한다

by 새벽나무

어른이나 아이나 모두 좋아하는 것들이 있다. 수족관, 놀이공원, 수영장 미끄럼틀 등등... 어른들은 처음엔 ‘에이~애들이나 하는걸...’ 하다가도 막상 그곳에 가면 무장해제가 되고 옛날을 추억하게 된다. 그런 것 중 하나가 ‘분수’다. 바닥에서 물이 솟아나는 분수, 주변에 횃불 든 조각 상들 사이에서 물이 나오는 80-90년대 분수, 라스베가스나 두바이 호텔 주변의 유명한 분수 등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행복한 기억들과 동심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그리고 분수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다.


클래식 전용 공간인 예술의전당엔 공연장 못지 않은 명소가 있다. 바로 ‘음악분수’다. 서울의 남단 끝에 예술의전당이라는 문화 공간이 처음 생겼던 80년대 말 그곳은 돈 많은 일부 계층이나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많았다. 심지어 외벽이 육중한 돌 장식의 높은 담장으로 둘러 쌓여 있어서 일반 시민들이 선뜻 들어오고 싶도록 만드는 이미지는 아니었다.


음악분수 조성은 그런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공연을 보지 않는 사람도 부담 없이 산책하듯 예술의전당을 찾게 할 수는 없을까? 그래서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분수를 광장에 조성하게 되었고 이름도 ‘세계음악분수’ 라고 지었다. 당시 라디오방송을 오랫동안 하고 있었던 필자에게 음악 선곡을 해줄 수 있느냐는 회사측의 의뢰가 왔고 추가 수당을 더 주는 일은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 라디오 DJ가 꿈이었던 저는 기꺼이 음악분수 선곡이라는 일을 맡았다.


음악분수는 하루 3회 정해진 시간에 1시간씩 가동되고 한번에 15-16곡의 음악과 함께 분수 쇼를 즐길 수 있다. 한 주에 15곡씩 한 달에 60곡 이상의 선곡을 해야 한다. 예술의전당 음악 분수의 특성을 살려 800여개의 노즐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어야 하기 때문에 음악을 선곡하면 제어실에서는 그 음악에 맞추어 노즐을 디자인한다. 기본적으로 클래식 공간의 시설이기 때문에 가요는 틀지 않으며 아무리 좋은 곡이라도 분수와 어우러졌을 때 효과가 약하다 거나 특정 연령층만 좋아하는 노래는 선곡하지 않는다. 때로는 그때그때 화제가 되는 곡들이나 의미 있는 곡들처럼 시의성 있는 선곡도 중요하다.


음악분수가 점점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전당의 명소가 되자 많은 사람들은 공연과 상관없이 단지 음악 분수를 보러 예술의전당을 찾고 있다. 심지어 몇 년 전엔 해외 유학중인 남학생이 한국에 있는 여자친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싶은데 분수 앞에서 하고 싶다며 연락을 해 왔다. 저는 그 학생을 도와 깜짝 이벤트를 꾸몄다. 방학을 맞아 남학생은 여자친구를 데리고 분수 쇼를 보러 왔고 저는 분수 15곡 중 7번째에 남학생이 신청한 프로포즈 송을 선곡하고 그 곡이 분수와 함께 울려 퍼질 때 남학생은 여자친구에게 반지를 건넸다. 그 두 사람은 아마 지금도 행복하겠지?


특히 한낮의 햇빛이 잦아드는 초저녁 우면산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 때쯤 사람들이 분수대 앞으로 모여든다. 젊은 연인들, 유모차를 끌고 산책 나온 가족들, 식사 약속을 위해 모인 중년 여성들, 그날의 공연을 보기 위해 조금 일찍 도착한 관객들... 특이한 것은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분수를 보는 사람들이 표정이 모두 잠시나마 현실을 잊은 듯 행복한 모습들이라는 점이다.


전당에 입사해서 해왔던 여러 가지 일들 중에 단언컨대 가장 보람 있고 즐거웠던 일은 음악분수 선곡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일이고 그런 사람들의 표정을 내 눈으로 매일 확인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회사일로 지치거나 하던 일이 때로 예측하지 않았던 결과로 나타나서 실망될 때 잠시 음악 분수를 감상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힘을 얻곤한다.

“그래!! 내가 이 맛에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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