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전 세계적인 기후 변화로 지구는 몸살을 앓고 있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여름 장마가 따로 있었던 우리나라도 폭우와 폭서가 반복되고 연일 예측 불가능한 날씨를 경험하고 있다. 예년에 비해 부쩍 비 오는 날이 많아지면서 저의 발걸음도 전시장을 향하는 빈도가 늘어난다.
2011년, 그 해 여름은 우리 국민들에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있다. 7월 말 서울의 강수량은 '100년에 한번 내리는 폭우' 라는 타이틀을 기록하며 서울의 남쪽을 강타했다. 우면산을 등지고 위치해 있는 예술의전당도 폭우의 공격을 피해가진 못했다. 우면산 산사태로 오페라 극장 5층에 위치한 사무실의 뒷문으로 2미터가 넘는 뻘 같은 진흙이 밀물처럼 밀려 들어와 100여 평의 사무 공간이 흙탕물 속에 잠겨버렸다.
디자인 미술관을 총괄하며 전시 기획 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나의 사무실은 오페라 극장이 아닌 미술관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오페라 극장 사무실을 쓰고 있던 동료들이 얼마나 다행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실은 남몰래 마음 졸이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 당시 미술관에서는 프랑스 오르세미술관의 진품들을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오르세미술관 특별전>이 전시되고 있었다. 우면산 산사태와 연일 계속된 폭우는 전기, 수도 등 사회 기간 시설들도 일시에 마비 시킬 정도로 강력했다. 보통 중요한 작품들이 전시되는 전시장에는 항온항습기를 설치하여 그림들을 보호해야 하는데 정전으로 인해 전시장의 항온항습기가 만 하루 이상 작동되지 않고 있었다.
그림들은 벌써 표면이 물결 모양으로 구겨지는 1차 변형이 나타나고 있었고 만약 서둘러 항온항습기를 복구 시키지 못한다면 유화 그림들의 가운데가 터지는 2차 변형을 겪게 될 것이고, 고흐, 마네, 모네 세계적인 화가들의 명화를 손상 시킨다면 산술 불가능한 손해배상과 함께 한국과 프랑스 간 외교 문제까지 발생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마주하게 되었다. 함께 전시를 준비했던 공동주최사 측의 대표는 망연자실해서 전시장 바닥에 넋이 나간 채 앉아있었다.
전시기획자로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사장님께 긴급 보고를 하고 예비비 천만 원을 쓸 수 있게 해 달라고 설득했다. 간신히 허락을 받아낸 나는 100 여 개의 서울 시내 에어컨 대리점에 일일이 전화를 돌려 오늘 당장 설치 가능한 에어컨을 십여 대 구입했다. 한 여름 에어컨의 확보도 어려웠지만 당장 설치가 가능한 곳을 찾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그래도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했던가? 간신히 항온항습기를 수리하고 인력 추가와 함께 당일 설치해주시겠다는 기사님을 수배하여 전시장마다 에어컨과 제습기를 설치했다. 전시장에서 밤을 새며 그림들이 복원되기를 기도했다. 다행히 변형을 보이기 시작했던 일부 그림들은 에어컨 바람을 쏘여준 지 12시간이 지나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며칠 뒤 하늘이 뻥 뚫린 것 같았던 비도 서서히 그쳐갔고 홍수로 인한 피해는 빠르게 복구 되었다. 호사다마를 보여주듯 <오르세미술관>전은 그 해 최다 관람객수를 기록하며 최고의 전시가 되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나는 비가 오는 날이면 별일이 없어도 전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는 버릇이 생겼다. 에어컨은 잘 나오는지 항온항습기는 잘 작동되는지 나도 모르게 살피게 된다. 일상을 아무 문제 없이 보낸다는 것…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우리는 큰일을 당해보고 나서야 깨닫곤 한다.
끝나지 않을 듯 뜨겁게 타오르던 이 여름도 가을을 향해 달려가고있다. 가을이 오면 언제 더웠냐는 듯이 서늘한 바람과 아름다운 단풍이 우릴 기다릴 것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소소한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