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의 추억과 평양유람기(1)

by 새벽나무

더운 여름 날 가장 많이 먹게 되는 음식은 ‘냉면’이 아닐까 싶다. 점심시간에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잊지 못할 냉면의 추억이 떠올라 메뉴를 냉면으로 정했다. 필자는 2006년 평양 ‘옥류관’의 냉면을 맛볼 기회가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북한동포 돕기에 기부를 하고 있었는데 평양에 있는 적십자 병원 정형외과 병동 개보수 사업과 평양 내 탁아소 물품지원사업의 후원자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하게 되었다. 무슨 통일의 일념으로 기부를 했던 것은 아니고 정치와 상관없이 ‘인민’들은 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기부를 시작했다. 내가 북한에 기부하고 있다고 하면 정치에 민감한 주변 사람들은 내가 ‘운동권’인지, ‘종북’인지 묻곤 한다. 하지만 나의 기부는 순수하게 ‘인도주의’적인 차원의 기부이다.


평양에 가려면 북경에서 비행기를 타야한다. 북경에 도착하자마자 북경주재 북한 대사관에 들러 비자를 받고 고려항공에 가서 비행기 표를 샀다. 여행을 많이 다니다 보면 비자 관련해서 특이점이 있는 나라들이 몇몇 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에 입국할 때 비자를 받을 경우 여권에 도장을 찍지 않고 작은 종이에 따로 받아 보관한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과 적대국인 나라들(이란, 이라크, 예멘 시리아 등 중동의 여러 나라들)로 여행할 때 여권에 이스라엘 도장이 찍히면 입국을 거부당하거나 필요이상 불편한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랑랑이 2008년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마치고 밤 비행기로 다음 연주를 위해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할 때 여권에 이스라엘 도장이 찍힌 것을 보고 경유지의 항공사가 발권을 거부한 적이 있었다. 한밤에 아주 곤란했던 사태에 맞닥뜨렸었고 대사관, 외교부 등의 핫라인을 통해 겨우 출국시켰던 경험이 있었다. 그때 이후 필자는 이스라엘 여행을 위해 비자를 받을 때 여권에 도장을 찍지 말아달라고 코멘트 했고 자연스럽게 작은 종이에 이스라엘비자 도장을 받아 여행했었다.

북한도 마찬가지였다. 평양에 가기위한 북한 비자는 작은 종이쪽지에 도장을 찍어서 발급해 주었다. 북한대사관은 북경주재 대사관들 중에서 두 번째로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하니 그 당시 중국이 북한을 형제의 나라로서 예우한다는 말이 실감났다.


다음날 아침식사 후 평양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그 전날 고려항공에서 티케팅을 해주었던 여직원들이 고려항공의 스튜어디스가 되어 우리를 반겼다.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하고자하는 북한의 인력운영 방식이라 한다. 우리가 탄 JS152비행기에는 2/3가 외국인이었는데 모두 주재원과 특파원들이란다. 평양에 그렇게 많은 외국 사람들이 살다니 의외였다. 지금은 순안 공항이 개보수를 하여 현대적 건물로 변화했지만 그 당시 공항은 김일성의 사진이 상징적으로 게시된 2층짜리 단출한 건물 하나가 다였다. 약간은 을씨년스러울 만큼 이용객이 적었고 비행기가 뜨는 요일에만 붐비는 그런 곳이었다.


고려항공의 비행기는 겉보기에는 여타 다른 항공사들과 별로 다를 바 없었지만, 영어로 표기된 문구 아래 한글로 적혀 있는 여러 지시문들은 서비스 정신에 입각한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당황스런 문구 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커피를 주문했을 때 잔에는 블랙커피가 나오고 설탕과 프림을 따로 주는 방식이었는데 프림의 겉면에는 ‘가루우유’라는 생경한 북한말이 표기되어 있었다.


또한 비행기 좌석에 앉고 난 뒤 안전벨트를 맬 때 앞좌석 등받이 쪽에 지시문에 써 있는데 ‘Please fasten your seatbelt.’ 라는 영문 밑에 ‘박띠를 매시오’라고 박력 있게 씌어 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려 이륙할 때 비행기 천정에 물방울이 맺혔다. 결로현상을 해결하지 못했는지 이륙할 때 안개비처럼 작은 물방울들이 머리위에 떨어졌다. 당황하는 사이 비행기는 이륙하여 평양을 향해 날아올랐고 기내 빗방울도 어느새 멈췄다.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일사천리로 수속이 끝나고 공항에 벤츠 리무진이 대기해 있었다. 북한에서 기부자들은 외교관급의 대우를 받게 된다. 그들 입장에서는 외화벌이를 하게 해주는 사람들이므로 숙소도, 차량도 최고급 의전을 해주었다. 안내원들이 꽃다발을 준비한 것으로 봐서 짐작 가는 곳이 있었다. 역시 예상대로 우리는 만수대로 향했다.


만수대는 평양에 입성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 찾아야만 하는 곳이다. 뉴스나 사진에서 본 커다란 김일성 동상이 서 있는 그곳 말이다. 북경으로 오기 전 수유리에 있는 통일교육원에서 사전 교육을 받을 때 만수대에서 동상을 향해 묵념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들었기 때문에 나는 묵념을 하지 않았다. 방실방실 웃고 있던 안내원들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기념사진을 찍고 주위의 경관을 잠시 보았다. 나지막한 동산처럼 평양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들이 준비한 필수 코스인 김일성이 태어난 생가인 만경대를 둘러보고 우리가 묵게 될 양각도 호텔로 향했다. 평양엔 생각보다 많은 호텔이 있었다. 이렇게 많은 호텔을 뭐에 쓰나 했는데 점점 중국인 단체관광도 늘어나서 호텔이 만원이란다.


양각도 호텔은 외국인 전용호텔로 주로 비즈니스 차 방문하는 외국인이나 외교사절들이 묵곤 한다. 우리나라의 여의도처럼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이 곳은 다리를 건너서 오게 되어있는데 유사(?)시 이 다리만 폐쇄하면 가둬놓고 감시하기 좋은 지리적 위치 같았다. 반면에 정치관련 사항으로 평양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고려호텔에 묵는다고 한다. 평양역 부근의 고려호텔이 80년대 완공되어 오래된 반면 양각도 섬에 새로 지은 양각도 호텔은 95년에 완성된 특급호텔로 그 당시엔 시설이 깨끗했다.


“환영만찬에 가실 시간입니다.”

(다음 회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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