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의 추억과 평양유람기(2)

by 새벽나무

(1회에 이어서)


만찬 장소는 어떤 건물 지하에 있는 럭셔리(?)한 식당이었다. 인민들은 꿈도 못 꿀 소고기를 종업원들이 구워주는 그런 곳이었다. 고기를 구워주던 종업원이 무대 위에 올라가서 전자 기타나 가야금을 연주하는 극장식 요리집이었다. 해외에 나가있는 북한 음식점들이 대게 이런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고 들었다.


한창 여흥을 즐기고 있는데 환영일행 중 한분이 “예술의전당에서 오셨으니 노래한곡 하시지요?”라고 말했다. 나는 당황했지만 거기서 거절하면 분위기가 가라앉을까봐 무대 위로 올라갔다. 노래방책에는 과거 우리아버지 세대가 부르셨을 법한 옛날 노래들만 가득했다. 나는 고심하다가 아버지가 자주 부르셨던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불렀다. 필요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마치니 열화(?)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우리 테이블이 아닌 오른쪽 앞 테이블에 당 간부 모자를 쓴 군인이 절도 있게 박수를 치다가 “제청합네다!!” 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지금도 ‘눈물 젖은 두만강’ 노래만 들으면 그 때 그 곳의 기억과 박수치던 군인의 얼굴이 떠오르며 아직도 몹시 떨린다.


이튿날 우리는 묘향산으로 향했다. 묘향산 계곡에서 식사를 하기 전에 세계 각국의 국가원수들이 김일성, 김정일 부자에게 선물한 것들을 보관해 놓는 전시관을 의무적으로 관람해야 했다. 그 규모가 얼마나 컸는가 하면 과거 냉전시대 소련으로부터 받은 김일성이 승차했다던 열차 한 량이 통째로 전시되어 있을 정도였다.

밖으로 나와 시원한 차를 마시는데 나무냄새에 머리가 아찔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묘향산은 나무가 울창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일설에 의하면 단군신화의 배경이 되었던 산이라고도 한다. 계곡에서 식사를 마치고 우리를 수발했던 여성 안내원들이 계곡물에 설거지를 하는 것을 보고 “계곡물이 오염될 텐데요..” 라고 걱정하니 “일 없습네다!!” 라고 대답한다. 사람의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했던 그 당시엔 환경에 대한 의식이 없었던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는 팔만대장경 판본을 보관하고 있다는 보현사를 들러 다시 평양으로 돌아왔다.


셋째 날 아침 우리는 이번 방북의 목적지 조선 적십자병원 정형외과로 향했다. 이곳은 북한 내에서 가장 크고 시설이 좋은 병원이라고 했다. 시골에서도 다 죽어가는 사람이 죽기 전에 꼭 들러서 치료받고 싶어 하는 곳이란다. 수술실은 우리의 60~70년대 초 수준이었다. 아니면 동구권의 60년대 수준이랄까? 예전 몽고의 열악한 수술실을 방송을 통해 본 적이 있었는데 그곳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손 볼 곳이 많아 공사규모가 커질 것 같았다.


기술자가 병원을 실측하는 동안 우리는 9.15 주 탁아소로 향했다. 9.15 주 탁아소는 엄마의 직업상 출, 퇴근 시간이 불규칙한 가정의 자녀가 우선 입소 대상으로 엄마의 직업이 공훈배우이거나 특파원, 기자인 경우 입소가 가능한 탁아소였다. 기득권층의 자녀들을 맡아 당에서 키워주고 있는 곳이었다. 두 살 반부터 여섯 살까지의 아이들 600여명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생활하고 주말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이곳 탁아소는 시설도 좋고 조건도 좋아 보이는 데도 물자가 많이 부족하단다. 그러니 다른 곳은 어떠랴...


우리가 방문한 이후 남측의 ㅇㅇ병원이 방북하여 북한의 디스크 환자들을 수술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열악한 수술실을 보고 개보수비용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혀여러 기부자들의 기부금을 모아 지금은 적십자병원의 수술실이 현대적인 시설로 개보수 되었다고 한다.


넷째 날 우리는 평양 시내 관광을 했다. 그리고 옥류관에서 마지막 식사를 했다. 그때 맛본 옥류관의 냉면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양념 맛이 세지 않아 본연의 재료의 맛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는 슴슴하고 소박한 맛의 냉면이었다. 다시는 먹지 못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 맛있었다. 시간이 흘러 나보다 훨씬 나중에 옥류관을 다녀온 사람들의 얘기를 전해 들으니 옥류관의 냉면 맛도 조금은 변했다고 한다. 어른들이 좋아하는 담백한 맛 대신 간이 쎈 맛의 냉면이 되었다고...


식사를 마치고 나왔는데 길 건너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데자뷔처럼 어디서 많이 본 건물 같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나 해서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그곳은 바로 ‘윤이상 음악당’이었다. 1998년 나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오페라 페스티벌을 기획했었는데 그 때 공연했던 오페라 작품 중 하나가 윤이상의 ‘심청’ 이라는 오페라였다. 공연 프로그램에 평양에 소재하고 있는 윤이상 음악당의 사진을 실었는데 그때 기억으로 그 건물이 눈에 들어 왔었나보다. 나에겐 실제로 그 음악당을 볼 수 있었던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내가 방북한 이후 남북관계가 급속히 경색되어 민간교류 뿐만 아니라 북한 돕기 통로가 상당히 제한적으로 막혔다. 그래도 순간순간의 노력이 합쳐져 미국과 북한의 회담이후 핵시설 폐기, 기타 민간 교류의 움직임이 활발히 나타났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2025년 우리와 북한의 관계는 더욱 멀어져서 한반도내의 정치협상을 우리들끼리만 할 수 없는, 첨예한 국제 정세 속에서 판단해야 할 만큼 복잡해 졌다. 향후 남북관계가 어떻게 발전할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평양은 참으로 독특한 곳... 쉽게 가 볼 수 없는 비밀의 화원 같은 곳... 하지만 그 안에도 인생이 있고 꿈이 있고 경쟁이 있고 희망이 있다. 언젠가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도 해빙되어 또는 새로운 남북관계가 정립되어 평양과 묘향산, 옥류관을 갈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지금 북한은 관광지를 적극적으로 개발하여 외국인들에게 북한여행 상품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그 당시 방북의 경험은 거창한 사명감과 목표를 가지고 했던 일은 아니었다. 현재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작은 도움으로 그리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그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함께 동참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해서 한 일이었다. 뭐든 어떤 일이든 시작은 극히 미약한 법이니까.. 오늘따라 냉면이 참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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