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의 역습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창궐하던 그 때 연합연습에 참가하기 위해 대전 전투지휘훈련단(BCTP 단)에 다녀왔다. 내가 부여받은 임무는 군단의 기동 책임 장교였는데, 군단내 모든 기동부대를 ‘연합 창조 21모델’ 이라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장비 상에서 군단 지휘부의 지시를 받아 PC에 명령을 입력하는 절차를 감독하는 역할이었다. 기동반에는 각 사단과 여단의 기동부대를 통제하는 게임어들이 수십 명 편성되어 훈련을 준비했다.
이들은 BCTP 단에 참가하기 전에 약 1주일간 군단 자체 집체교육을 받으며 팀워크를 익혔고, 대전으로 전개한 이후에는 1주일가량 ‘연합 창조 21모델’을 숙달하고 DB를 확인하며, 대항군과 실제 예행연습을 통해 훈련 능력을 극대화했다.
그날은 연합연습을 실시하기 전, 마지막으로 최종 DB를 점검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훈련단의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BCTP 단에 전개한 500여 명 중 1명의 간부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럴 리가... 우리는 이곳에 전개한 후 단 한 번도 외출을 하지 못했고, 통제된 지역에서만 생활했는데...’
잠시 후, 모든 훈련 준비 일정이 중지되었고, 중앙방송을 통해 “전 인원 일체 사무실 출입을 금지하고, 저녁식사도 통제한다”는 지시가 전파되었다. 그리고 질병관리본부 직원들과 육본의 중앙방역통제본부 요원들이 나와 해당 사무실과 인접 사무실에서 훈련 준비를 했던 인원들의 검사를 진행하고, 이어서 격리가 시작되었다. 그때가 새벽 2시였다. 이후 전 인원은 별도의 접촉이나 대화를 금지한 채 훈련장 숙소로 귀가 조치되었고, 이후 상황 통제를 기다렸다.
다음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확진자와 함께 중앙 숙소를 사용했던 400여 명의 훈련 참가자 전원이 격리 대상이 되었고, 이들을 대체할 인원을 각 군단 및 작전사에서 선발하여 내일까지 BCTP 단으로 전개시키라는 것이었다.
‘그게 가능한가? 400여 명을 어디에 격리하고, 새로 오는 인원은 어떻게 선발해서 내일까지 이곳에 도착하게 할 수 있지?’
하지만 군대라는 조직은 위기 상황일수록 더욱 단단해진다. 육군본부의 통제로 53사단(부산)에서 31사단(광주)까지 생활관을 확보하여 400여 명을 분산 격리한다는 계획이 반나절 만에 수립되었고, 오전 11시부로 수송이 시작되었다.
격리를 준비하는 간부들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에 나갔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수많은 버스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출동 준비를 하고 있었고, 400여 명의 간부 및 병사들은 일사불란하게 통제에 따라 자신의 짐을 꾸리고 버스에 분산 탑승하고 있었다. 민간 조직이었다면 절대 이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떠나는 기동반 요원들과 멀리서 눈을 맞추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2주간 하나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이제 연습이 시작되면 적의 숨통을 끊기 위한 작전을 실시하기만 하면 되었는데... 너무도 아쉬웠다. 그렇게 그들은 각자의 격리 장소로 떠나갔다.
남겨진 우리 기동반에는 책임 장교였던 나와, 숙소가 달라 격리 대상이 되지 않은 여군 하사 1명만 남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연합연습은 계획대로 진행되는 건가? 아님 취소인가?’ 수많은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내일 전개할 병력에 대한 사항이 군단으로부터 전달되기 시작했다.
“내일 게임어 요원이 전개한다. 전개 인원은 후송된 인원 수와 동일하게 선발했다. 내일 전개 이후 다음 날 하루를 훈련 준비 시간으로 부여하고, 연합연습은 3일 후 정상 진행한다. 책임 장교는 정상적인 훈련이 진행될 수 있도록 현장에서 만전을 다하기 바람.”
'헐…… 얼굴도 모르고, 교육도 받지 않은 게임어들을 내일 받아서, 모레 하루 준비하고, 3일 후에 정상적으로 연습을 하라고? 이게 가능한 일인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떻게 해야 하나. 차라리 나도 격리시켜주지... 그냥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만 하며 하루가 흘렀다. 여지없이 날은 밝았고, 게임어 2진의 도착 예정시간에 맞춰 버스 하차 장소로 나갔다.
그리고, 그들을 처음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