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장 직책을 전라남도 해안 경계 부대에서 수행했다.
후방 해안 경계 부대의 특성상 소초 단위로 경계 거점을 운용하며, 적의 침투나 밀입국을 차단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로 인해 각 소초 간 거리가 멀고, 사실상 독립된 부대처럼 운영되는 탓에 부대 관리의 취약점이 자주 노출된다. 따라서 중대장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현장을 순찰하며, 수시로 문제를 파악하고 조치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수적이다.
어느 날 소초장인 A 중위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소초 내에서 가혹행위가 발생했으며, 가해 병사를 부소초장실에 격리 조치 중이라는 보고였다. 즉시 행정보급관과 함께 순찰차에 올라 타 해당 소초로 달려갔다. 현장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B 상병이 후임병 3명에게 지속적인 가혹행위를 저질렀고, 그중 1명이 용기를 내어 분대장에게 신고했고, 분대장이 이를 소초장에게 보고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내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악질적이었다.
서남해안은 조수 간만의 차가 커 간조 시에는 선박이 뻘 위에 드러누울 정도로 바닥이 드러난다. B 상병은 이 지형을 악용했다. 선박 확인 초소 근무 중, 후임들에게 말도 안 되는 퀴즈를 내고, 정답을 맞히지 못하면 벌칙이라며 간조 시 뻘에 들어가 만조가 될 때까지 대기하도록 했다. 가슴 높이까지 바닷물이 차오를 때까지, 밧줄 하나만 던져주고 방치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를 느꼈다"고 진술했다.근무에서 복귀할 때도, 옷이 젖은 이유를 묻는 이들에게는 "근무 중 실수로 잠시 바다에 빠졌다"고 거짓 보고를 하도록 강요했다.
나는 곧장 B 상병을 불러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그는 순순히 인정했다. "후임들과 친해지고 싶어 장난삼아 그랬다"고 항변했지만,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나는 곧바로 대대장님께 보고하며 단순 징계나 영창이 아닌, 초병 폭행 혐의로 형사처분이 필요하다고 건의했고, 대대장도 이를 승인했다.
즉시 지역 헌병대(현재의 군사경찰대)에 수사를 의뢰했고, B 상병은 구속되어 기소 의견으로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며칠 뒤, B 상병의 아버지가 부대를 찾아왔다. 행정보급관과 함께 면회실에서 마주앉았다. B상병 아버지가 먼저 말했다.
"중대장님. 그래도 우리 아들이 중대원이었는데... 한 번만 용서해줄 수 없겠습니까?"
"B 상병이 저지른 행위는 명백한 초병 폭행으로, 군법에 따라 처리될 수밖에 없습니다. 피해자들 모두도 엄한 처벌을 원하고 있습니다."
"아이고, 다들 너무하시네. 나도 군대에 갔다 왔고, 80년대 철원 0사단에서 근무했어요. 그때는 선·후임이 때리고 대가리 박고… 그게 군대 아닙니까? 중대장님이 아직 어려서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
"지금은 그런 폭력이 절대 허용되지 않습니다. 저 역시 도와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에이 참… 요즘 애들 군대는 군대도 아니지. 우리 땐 소대장도 때리고 그랬다니까요. 그러니까 정이 드는 거예요. 중대장님도 소대장 때 맞아봤잖아요?"
그 순간, 참을 수 없는 불쾌함이 밀려왔다. 행정보급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중재에 나서며 아버지를 제지했고, 면회는 그렇게 종료되었다. 돌아오는 길, 여러 생각이 스쳤다.
아버지가 그렇게 생각하니, 아들도 그것이 범죄라는 인식조차 없이 장난이라며 폭행을 저지른 것이다. 결국 아버지의 무지한 인식이 아들을 범죄자로 만든 셈이었다. 군에서 경험한 과거의 폭행을 마치 전우애의 상징처럼 영웅담으로 포장해 자식에게 전한다면, 그 자식은 폭력을 당연시하는 군인이 되고, 나아가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
B 상병은 군사재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국군 교도소로 이감되었다. 그 이후의 소식은 알지 못한다. 단지, 얼마 후 아버지로부터 한 번 더 연락이 와 "탄원서를 써줄 수 없겠냐"는 부탁을 받았지만,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군대는 더 이상 과거처럼 폭력을 미화하거나 용인하는 조직이 아니다. 폭력은 장난이 아니라 범죄이며,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리고 그 폭력의 시작은, 때로는 가정에서 전해지는 왜곡된 경험담 한 마디일 수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아버지들이 조심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