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로마까지 실크로드를 거꾸로 거스르는 24시간에 걸친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가족 4명이서 짐을 줄이고자 했으나, 때는 12월 말인 겨울이라 큰 캐리어 두 개는 어쩔 수 없었다. 새벽 6시 조금 넘어 택시를 두 대 부른 우리는 신경주역 서울역 인천공항을 거쳐 로마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나라 국적기를 탔기에 마스크를 계속했으나, 입국 심사장부터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은 모습을 보고 우리도 따라 벗었다. 3년 만에 자유를 얻는 기분이었다.우리에겐 엔데믹의 순간이다.
공항에서 로마 시내까지 가는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 표를 자판기를 통해 어렵사리 구입하여, 도착한 테르미니역 앞 밤거리는 노숙자의 세상이었다. 아내는 연신 무섭다는 말을 했고, 중학생인 아들 둘도 놀라는 눈치였다. 도로와 인도가우리네 보다 좁기에 걸어서 10분 거리인 숙소까지 캐리어를 끌기에도 힘이 들었고, 소매치기 천국이라는 테르미니역 앞이라 미리 준비한 자물쇠를 백팩 여기저기에 채우고 어두운 밤거리를 걸었다.유럽, 로마의 첫인상은 그렇게 되어버렸다.
긴 이동 시간의 여독을 풀기 위해 다음날 푹 자려고 했으나, 시차적응 못해서 새벽에 밥 달라고 하지 말라는 민박집 사장님의 농담처럼, 우리는 모두 일찍 일어나 버렸다.
시간이 되면 가려고 했던 판테온을 가기로 결정하고 숙소를 나섰다. 전날 밤거리와는 달리 맑고 쾌청한 날씨에 유럽분위기 물씬한 거리와 숙소 앞의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메트로역 위 공원의 녹음은 우리 가족 모두를 기분 좋게 만들어 주었다.
빛이 들어오는 판테온의 천장, 맑은 날의 로마 거리
그리스로마 신화에나 나올법한 신전 모양의 판테온 내부에 들어가니, 어릴 적 드나들던 석굴암 내부가 떠올랐다. 석굴암이 요즘은 보호를 위해 유리 밖에서만 관람이 가능하지만 경주 사람이라면 어릴 적 석굴암 내부에 들어가 관람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불국사 청운교백운교 위에서 유치원 졸업사진을 찍은 것도 비밀?). 물론 판테온은 석굴암보다는 훨씬 큰 건축물이다. 실내가 둥글고 기둥이 없다. 옛날 돌다리 등을 보면 아치 형태로 힘을 분산시켜 주는데, 그 아치가 3D 입체로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아치의 가장 중심에는 제일 강한 돌이 있어야 모든 힘을 견딘다고 알고 있는데(나름 토목공학과 졸업) 그 가운데가 비었다니, 그곳으로 빛이 들어오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성천사의 성
성천사의 성에서 바라본 바티칸
성천사의 성에서 바라본 로마 시내
판테온을 나온 우리는 아이들에게 젤라토를 하나씩 사주고 바티칸을 향해 걸었다. 가는 길에 성천사의 성을 만났다. 계획에는 없었지만 여기 성에 올라가 보고 싶다는 둘째의 간곡한 요청에 어느새 우리는 입장을 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대만족이었다. 성 자체보다는 꼭대기에서 본 로마와 바티칸의 엄청난 뷰에 놀라고 말았다. 날씨까지 맑았기에 우리 가족 모두는 어젯밤에 놀란 유럽이 아닌 Amor 한 Roma에 빠지고 말았다.